‘나무도 바위 돌도 없는 뫼에 매게 휘좇긴 까투리의 안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도 끊고 돛대도 꺾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 남은데, 사면이 거머둑 저문 천지 적막까치놀까지 떴는데 도적 만난 도사공의 안과…’ 고시조 중 일부다. 이 고시조에서 나타나고 있는 까투리(암꿩)와 도사공의 마음은 고립무원이고, 함의하는 내용은 절망감뿐이니 우리 현실이 바로 그러하다.

대통령으로서 직무는 국가전반에 걸치고 국가수호와 국민행복을 위해 편히 쉬는 날이 없어야 하건만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에 오랫동안 공식회의를 주재하지 않고 두문불출 상태다. 식물 정부에 대해 국민과 정치권 안팎에서 조여 오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하야 목소리와 탄핵이니 그야말로 좌불안석인바, 이는 대통령 취임 때 선서한 ‘헌법 준수와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하지 못한’ 행위에서 기인된 것으로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 지지도에서도 대통령 사상 최저치를 받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있어 이번 한 주는 운명을 가를 기간이다. 국회의 탄핵에다가 특검까지 준비돼 있고, 5차에 걸쳐 펼쳐진 ‘대통령 퇴진’ 촛불민심은 거세게 타올랐고, 각계 원로들도 질서 있는 퇴진을 요구하며 늦어도 내년 4월까지는 하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더욱이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새누리당 핵심 중진들이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박 대통령이 강제성을 띄운 탄핵보다는 하야하는 것이 차라리 명예롭다고 건의했다니 앞서 적시한 까투리와 도사공의 마음에 비견되는 절망감이 가득할 것이다.

산적한 국정을 두고 청와대와 정부가 혼연일체가 돼 정상 직무를 해도 헤쳐 나가기 어려운 정세에서 손 놓고 있는 무기력한 정부다. 특히 최순실씨의 국정 농단에 깊숙이 관여한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큰데, 그동안 다섯 차례에 걸쳐 전국적으로 보여준 촛불민심은 현 시국에서 대통령이 어떻게 받아들이며 처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고 이미 선포한 상태다. 박 대통령은 무거운 민심을 받아들여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 등 진퇴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는 등 정치적 입장을 발표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민심이 천심임을 깨달아 큰 틀에서 결단을 내린 것은 국가 장래와 사회안정을 위해 다행스럽다. 권력이 민심을 이길 수 없다는 엄중한 교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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