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오후 시작된 5차 경남촛불 집회에 참석한 시민이 아이를 앉고 자유발언을 듣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민아·강병용 기자] 날씨는 추웠고, 분노한 민심은 뜨거웠고, 광화문은 온정으로 훈훈했다.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에 첫눈이 내린 26일 오후. 현 정권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물어 전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또 한 번 열렸다. 촛불은 바람에 꺼지기는커녕 분노한 민심을 타고 더욱 뜨겁게 옮겨 붙었다.

서울에는 이른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전국 곳곳에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서 추운 날씨가 예고됐다. 이 때문에 참석자들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으나 막상 집회가 시작되자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리는 26일 오후 본행사에 앞서 사전행사로 행진이 진행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청와대로부터 200m 떨어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부근에서 시민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청와대를 포위하라’… 朴대통령 턱밑까지

이날 전국적으로 열린 촛불집회 참석자는 주최 측 추산190만명(총 인원), 경찰 추산 32만명(순간 최다인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이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 대해 인정할 수 없다”며 검찰조사를 거부하며 민심이 더 분노했다. 게다가 정치권의 탄핵 논의가 속도를 내면서 이날 집회는 탄핵정국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본집회에 앞서 오후 4시께부터 서울 광화문광장을 출발해 사전행진을 진행했다.

당초 경찰이 광화문 앞 율곡로 북쪽에 해당하는 구간 행진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전날 법원이 청와대 200m 거리인 신교동로터리까지 행진과 집회를 허용하면서 사상 첫 청와대 포위 행진이 가능하게 됐다. 행진은 동·남·서쪽으로 청와대를 포위하는 형태인 인간띠 잇기라는 이름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눈이 내리는 가운데서도 우의를 입은 채 질서정연하게 함께 거리를 걸었다. 거리에는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외침이 반복해서 쏟아져 나왔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권진현(47, 남)씨는 “대통령이 국민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청와대 근처까지 행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지점까지의 행진은 당초 오후 5시 반까지로 제한됐으나 시한을 넘겨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시위를 이어가면서 한때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경찰은 연행자가 1차 행진에서 한 명도 없었다고 밝혔다.

▲ 26일 5차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가운데 개업 9년 만에 처음으로 행진 인파를 맞은 서울 종로구 통인동의 ‘커피공방’이 급수쉼터를 개방해 시민들에게 따뜻한 물을 나눠주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날씨는 춥지만 나눔으로 마음은 따뜻하게”

본집회가 시작하면서 집회 곳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과 일반 시민들의 온정이 이어졌다. 광화문광장 일대에는 초와 종이컵을 무료로 나눠주는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추운 날씨였던 만큼 무료로 배부되는 핫팩과 차, 커피, 국밥 등이 인기였다. 참석자들은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집회를 더운 훈훈하게 만들었다.

이날 착한커피를 만드는 지적장애인들의 이동카페 해피드림카페는 따뜻한 음료 2000잔을 준비해 집회 현장을 찾았다. 김은정(31) 해냄일터 팀장은 “지적장애인들이 운영하는 이동카페인데 오늘은 추운 시위현장에 따뜻한 온기를 전하기 위해 나왔다”며 “날씨는 춥지만 나눔으로 마음만큼은 따뜻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을 위한 인근 상인들의 배려도 돋보였다. 개업 9년 만에 처음으로 행진 인파를 맞은 통인동의 커피공방은 이날 하루만 급수쉼터를 개방했다. 커피공방의 직원 김모씨는 “날씨가 추운데 따뜻한 물밖에 드릴 것이 없어 잠깐이라도 집회 참가자들이 몸을 녹이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준비했다”고 전했다.

▲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어린 아이. 이날 집회는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많았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가족 단위 참가자들 눈에 띄어

집회는 회를 거듭할수록 집회는 더욱 축제 분위기로 변해가는 양상이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유모차를 끌거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참석한 이들이 많았다.

남편, 두 자녀와 함께 집회에 참석한 박종미(44, 여, 서울 은평구)씨는 “대통령이 잘못해서 시민들이 이렇게 많이 나와서 얘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아이들에게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애쓰고 있다는 걸 산 교육으로 느끼게 해주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광화문 앞에서는 한때 북과 꽹과리를 치며 춤을 추는 이들도 있었고, 오후 6시에 시작된 본집회에서 가수 안치환, 양희은이 등장하면서 광화문광장은 한때 콘서트장으로 변하기도 했다.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가수 안치환이 공연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안치환은 ‘사랑은 꽃보다 아름다워’를 개사해 ‘하야는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가사를 열창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처럼 가족 단위 참석자들이 몰리면서 인근 호텔은 수일 전부터 예약이 대부분 마무리됐다. 특히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예약한 경우가 많았다. 이날 플라자 호텔 로비에서 만난 정진용(35, 남, 인천 연수구 송도동)씨는 “오늘은 늦게까지 목소리를 내고 싶은데 아이가 어려 호텔을 예약하게 됐다”며 “(비용이) 부담 돼도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이기에 가치가 있고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난 김현근(남, 경기도 성남 복정동)씨도 “일주일 전 호텔을 예약했는데 아기(8개월)가 어려서 (집회 참석은) 구경에 가깝겠지만, 그래도 아기한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밤 집회는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해산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다만 종로구 자하문로 인근에서는 27일 자정을 넘긴 시간까지 일부 참가자들이 해산하지 않아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이 3차례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하자 경찰이 강제해산에 나서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 보수단체들이 26일 서울역 광장에서 ‘제4차 대통령 하야반대 및 안보지키기 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한편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보수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4차 대통령 하야반대 및 안보지키기 국민대회’가 진행됐다. 이날 집회는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이 주관하고 ‘예비역기독군인회연합회’ ‘엄마부대봉사단’ 등 보수단체 600여명(경찰 측 추산)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눈이 내리는 탓에 우비를 입거나 우산을 쓴 채 집회에 참석해 “대통령 탄핵 반대”를 연신 외쳤다. 한때 보수단체 회원 중 일부와 시민 간 언쟁이 오가기도 했지만 다행히 큰 마찰 없이 집회가 마무리됐다.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박종옥(75, 남)씨는 “지금 시국이 풍전등화같다. 50~60년 만에 민주화를 만들었는데 현재 정권이 독재나 군사정권도 아니고, 대통령 임기는 5년으로 보장돼 있는데 탄핵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최순실 국정농단은) 탄핵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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