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연꽃은 7ㆍ8월 여름 연못에 흔하게 피는 꽃이다. 1~2m의 키로 뿌리는 더러운 진흙에 묻었으면서 물위에 고개를 쑥 내밀어 깨끗하고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 사람과 마주하면 그 사람이 누구든 또 무엇하는 사람이든 전혀 스스럼없이 먼저 반기고 온화하게 미소 짓는다. 가장 흔하지만 겸손하고 지극히 청결하며 고귀한 꽃이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사람의 능력으로는 못 만들 자연의 풋풋하고 그윽한 향기를 바람이 멎는 데까지 실어 보낸다. 그 향기는 불타는 여름 더위를 식혀주고 세속에 찌든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피조물인 어느 생명 하나라도 존귀하지 않은 것이 없고, 의미 없는 것이 없다. 연꽃도 그러할 것이지만 더운 여름 연못의 연꽃에서는 특별한 창조주의 심오한 뜻 같은 것을 느낀다. 그런 느낌은 누구에게나 경이로운 감동이며 감탄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열반에 들기 전에 행한 마지막 설법에서 대중에게 들어 보인 한 송이 꽃이 이 흔하지만 고귀한 뜻을 지닌 연꽃이다. 설법 대신 미소 지으며 연꽃을 들어 보인 그 의미가 무엇일까. 대중과 제자들이 어리둥절해 있을 때 열 제자 중 가장 뛰어난 제자인 가섭(迦葉)이 그 의미를 깨닫고 빙긋이 웃었다. 가섭은 석가모니의 참뜻을 알았다. 깨달음을 얻었다.

가섭에게 전해진 참뜻과 깨달음이란, 열반에 드는 묘한 마음인 열반묘심(涅槃妙心), 바른 법인 정법안장(正法眼藏), 눈에 보이는 만물은 실체가 없고 텅 빈 것이라는 실상무상(實相無相) 그리고 진실을 깨닫는 마음인 미묘법문(微妙法門)이다.

흥미로운 것은 부처가 들어 보인 꽃이 사실은 하늘나라 사람(天人)들이 전해준 천상의 금바라화(金婆羅華)꽃이라는 해석이다. 때 묻은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진리의 꽃이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와 가섭의 눈에만 보였다. 어쨌든 이렇게 깨달음이란 꼭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도 전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소위 불가(佛家)의 주요 화두인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 줄여서 염화미소(拈華微笑)다.

종교의 벽을 넘어 한 시대의 큰 스승으로 머물던 무소유의 법정(法頂)스님이 이승의 모든 것 ‘다 버리고 시공(時空)을 벗어나’ 홀연히 가셨다. 영혼이 떠난 그의 육신은 활활 타는 불꽃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풀과 나무를 기르는 흙으로 돌아갔다. 떠나보내기 안타까운 마음에 ‘불꽃 속에서 연꽃으로 피어나라’는 화중생연(火中生蓮)을 외쳤지만 ‘다 비우기 위해’ 중생의 이 소망마저 뿌리치고 다시 못 올 길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둘러 가신 것 같다. 창조주의 섭리로 빚어진 유한한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의 한 세상을 짧게 살다가 허망하게 가는 이 길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법정은 미몽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숙연하게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이승에서 함께 머물렀으나 그가 감을 슬퍼하며 뒤에 남은 사람들도 곧 뒤따를 이 길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간 선생이다. 종교를 뛰어 넘은 보편적인 도덕률(道德律)과 가치를 삶으로 실천하고 생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모범이며 스승이다.

범인(凡人)의 필설(筆舌)로, ‘다 버린다는 것’ ‘비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그려내기는 어렵지만 법정은 다 버리고 비웠으되 꽉 채웠다. 오히려 버리고 비웠기 때문에 많이 남겼다. 탁한 물에서도 연꽃이 정결한 꽃을 피우고 그윽한 향기를 뿜어내듯 그가 비우고 떠난 혼탁한 이 세상을 연꽃 같은 그윽한 향기로 가득 채워놓았다. 크게 비운 만큼 향기가 더 가득한 것 같지 않은가. 산골짜기 오두막에서 그가 쓰던 대나무 평상에 누워, 관도 수의도 없이, 평상복을 입은 채, 사리도 수습하지 못하게 하고 그가 산 무소유, 무욕(無慾)의 삶의 철학을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넘는 죽음에서도 실천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의 삶과 죽음은 권력이 된 종교와 권력의 화신(化身)이 된 종교지도자들, 막강한 권력이며 탐욕의 화신인 재벌, 권력화된 언론, 약한 사람을 짓밟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해이)에 빠진 자칭 이 나라의 지도층 인사들 모두가 진솔하게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할 깨끗하고 맑은 거울이다. 오만해지기 쉬운 현실의 가버넌스(governance)의 권력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아량을 발휘하는 대신 맞고함치고 싸우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극렬 이념 신봉자들에게도 그러하다. 남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주장과 이익만을 앞세워 서로 비난하고 상처주며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지 않는 경우라면 일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법정이 말한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그러하다. 법정의 삶과 죽음이 거울이 되어 우리 모두가 새롭게 달라질 수만 있다면 굳이 법정이 연꽃으로 환생하지 않아도 연꽃 향기 가 항상 가득한 세상이 될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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