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얼마 전 서점가의 오랜 추태 중 하나인 사재기를 한 출판사들이 적발됐다는 소식이 들렸다.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는 40여 일 동안 조사를 해 봤더니 <아버지의 눈물> <마법의 돈 관리> <4개의 통장> <정성> 4종이 사재기를 통해 전국의 유명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으며 이는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사재기 금지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해당 출판사를 문화체육관광부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출판 산업은 문화 예술 분야의 기본으로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그만큼 자부심을 갖게 되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드러난 점잖은 체면과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 그 중 하나가 사재기를 통한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이다.

사재기란 자기 회사가 출간한 책을 서점에 내놓고 자신들이 돈과 조직을 동원해 다시 사들여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리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정비석의 <자유부인>이후 숱한 베스트셀러가 이어져 왔고 대형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순위를 발표하기 시작하면서 사재기의 역사도 시작됐다.

출판사 직원이나 아는 사람들을 동원해 서점에서 직접 책을 사들고 나오던 것이 고전적 수법이라면, 이제는 책을 구매한 뒤 인터넷 사이트에 서평 등을 적어 올리면 책값보다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게 해주어 책 판매고를 올리는 잔꾀를 내기도 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품격과 권위를 갖춘 책만을 전문으로 낸다는 출판사들 중에도 뒤로는 사재기에 동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곳이 많다. 사재기는 출판가의 보편적 상술에 다름 아니라는 얘기다.

규모나 명성을 가리지 않고 이처럼 출판사들이 너도 나도 사재기의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는 것은, 다수의 결정에 따라 구매행위가 이뤄지는 군중심리의 영향력이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클 뿐 아니라 무엇보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언론사 등을 통해 발표됨으로써 권위를 등에 업게 돼 그 파급 효과가 더욱 크기 때문이다.

사재기를 없애자며 뜻있는 출판사들이 목소리를 높여왔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인터넷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수법만 더욱 교묘해지고 정도가 오히려 더 심해졌다. 하다못해 2008년 9월 정부 지원을 받아 신고센터까지 세우고 적발된 출판사는 과태료를 물게 하고 3년 동안 해당 출판사 출간 책을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일절 제외토록 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재기의 악습은 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법까지 어겨가며 한 권이라 더 팔아먹으려는 출판사의 사정도 딱하지만, 베스트셀러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구매 행렬에 동참하는 소비자의 행동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맛있는 집에 줄을 서고 재미있는 영화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만, 책이란 게 단순한 소비재하고 달라 자신의 지적ㆍ정서적 수준이나 취향, 독서의 목적과 목표 등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선택하는 것이 옳다.

한 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라는 소설이 광풍에 가까울 정도로 초베스트셀러라며 난리를 치자 뒤늦게 구매해 읽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 중에는 “별 것도 아니더만…”이라고 말했던 이들도 많았다. 그런 것이다. 남들이 재미있다 하면 나도 재미있고, 남들이 유익하다 하면 나에게도 유익하라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남이 하니 분수도 모르고 따라한다는 뜻이다. 굳이 분수를 따질 것까지는 없지만, 책을 읽는 것조차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떤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을 것인지 먼저 꼼꼼히 따지고, 숲에서 보석을 찾듯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것이다. 책방에 들러 수많은 책들을 둘러보고 그것들이 품고 있을 진정한 향기를 찾아내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이고 그것으로부터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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