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추수감사절… 축하만 하기엔 불편한 ‘진실’
개신교 추수감사절… 축하만 하기엔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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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20일 추수감사절을 맞아 개신교 각 교회에서 감사예배와 헌물을 드리는 등 축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마냥 축하만 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추수감사절(秋收感謝節, Thanksgiving Day)’은 1621년 가을, 플리머스의 총독 윌리엄 브래드퍼드가 수확의 풍요함을 감사하며,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축제를 3일 동안 열고 근처에 사는 인디언들을 초대해 초기의 개척민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데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180톤짜리 작은 배 ‘메이 플라워(May flower)’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향한 분리주의 청교도인은 126명이었다.

1620년 12월 상륙한 그 지점이 북미 대륙 동북쪽 해변가 ‘프리기스’라는 곳이었다. 이때 이들의 일행이 추위와 기아, 야수와 원주민들의 기습 가운데서 생존한 사람은 그 절반이었다. 1621년 3월 하순경 사모셀드라는 추장과 스구완도라는 인디언이 방문했다. 이들 인디언과 화친을 맺고 인디언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배웠고, 이들은 옥수수를 심고 고기를 잡으며, 열심히 일을 해 1621년 10월에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되었다. 카이버, 부레스포스, 윈슬우, 부로스터를 중심으로 생존자 55명과 협조했던 인디언 100여명을 초청해 3일간 축제를 베풀고 예배를 드렸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시작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학설이다.

이후 1864년 링컨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11월의 마지막 목요일로 정하고 국경일로 선포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고유한 풍습으로 정착됐으며 1941년 법령이 바뀌어 11월의 4번째 목요일로 정해졌다. 캐나다는 1879년 11월에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선포하고 지금은 매년 10월의 2번째 월요일에 축제를 열고 있다. 한국교회는 1914년 각 교파선교부의 회의를 거쳐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조선에 입국한 날을 기념한 매년 11월 제 3주일 후 3일(수요일)을 감사일로 정했다가 나중에 일요일로 변경해 매년 11월 셋째 주일로 정했다.

한편 추수감사절에 반기를 드는 측이 있는데, 바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다. 이들은 1975년부터 반(反)추수감사절 행사를 열며 억울하게 죽은 조상들을 추모하고 있다. 지난 2005년 11월 24일 북아메리카 원주민 3000명은 인디언 권리운동의 성지(聖地)인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섬을 찾아 추수감사절을 애도하면서 추수감사절이 아닌 추수강탈절이라고 분노했다. 당시 원주민들은 “식량을 나눠주며 백인들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며 “기력을 차린 백인들은 원주민을 배반하고 땅을 빼앗았다”고 주장했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사회학과 댄 브룩 교수도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그는 추수감사절을 자기성찰적 집단 단식을 하는 국가적 속죄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내 일각에서는 추수감사절이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절기라는 점을 꼬집으며, 추석을 전후로 추수감사절을 새로 지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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