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스틸. (제공: ㈜영화제작 전원사)

남녀 간 의심·갈등 
홍상수가 말한다

이후 첫 개봉 영화
연인의 흔한 이야기
메시지 역시나 난제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쿵짝쿵짝쿵짝쿵짝.’

왈츠풍의 배경음악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화가 ‘영수(김주혁 분)’는 동네 형 ‘중행(김의성 분)’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여자 친구인 ‘민정(이유영 분)’이 남자와 술을 마시다가 크게 싸웠다는 것이다. ‘영수’는 본인이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이 동네에 그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중행’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민정’에게 따져 묻는다. 말다툼하게 된 두 사람. ‘민정’은 자신은 수치스러운 짓 한 적 없다며 당분간 서로 보지 말자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영수’가 못마땅한 것이다.

각자 만의 시간을 갖게 된 ‘영수’는 곧바로 후회하고 ‘민정’을 찾아다니지만 집, 직장 어디에서도 ‘민정’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는 사이 ‘민정’ 혹은 ‘민정’을 닮은 여자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남자를 찾아 ‘재영’ ‘상원’ 등 여러 남자를 만나 술을 마시고 희희낙락거린다.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

‘영수’는 헤어지고 나서 자신이 ‘민정’을 정말 사랑하고 있음을 점점 더 깨닫는다. ‘민정’이 술을 마시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민정’만 있으면 된다.

지난 6월 배우 김민희와의 스캔들로 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홍상수 감독은 18번째 장편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지난주 열린 언론시사회는 스캔들 이후 첫 공식행사지만 홍 감독과 배우들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다.

▲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스틸. (제공: ㈜영화제작 전원사)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은 오늘 만났다 내일 헤어질 수도 있는 평범한 남녀의 이야기다. 홍상수 감독의 작품답게 영화는 여성과 남성 간의 미묘한 심리를 고민하게 한다. 주인공 ‘영수’가 본인이 직접 보지도 않은 일을 당사자에게 따져 물으면서 벌어지는 의심과 갈등을 통해 사랑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늘 그렇듯 영화는 홍상수답다. 크레딧은 홍상수 감독의 손글씨다. 이번에는 유난히 크고 시원한 듯하다. 동어 반복도 계속된다. 이는 술자리에서 한 여자를 어떻게 해보고 싶은 늑대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충분했다. 남자들은 홀로 방황하는 ‘민정’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던진다. 이 때문에 동네 술집의 주인장과 손님들은 그런 ‘민정’이 눈엣가시다.

“그냥 어디로 떠나버렸으면 좋겠어.”

‘영수’의 아는 동생인 ‘장완(조웅 분)’의 대사다. 모두들 ‘민정’을 안 좋게 보고 있지만 사실 그 마음속엔 ‘민정’과 술을 마시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영수’와 ‘민정’은 사실적인 연인관계의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홍 감독은 변주를 꾀한다. ‘민정’이라는 인물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다. ‘영수’와 각자의 시간을 갖기로 한 후 ‘민정’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부르는 ‘재영’에게 “저 민정이 아닌데요. 절 아세요”라고 되묻는다.

처음엔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재영’은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체를 하는 ‘민정’에게 묘한 매력을 느끼고 함께 술을 마시자고 제안한다. ‘민정’은 남자들에게 자신은 ‘민정’이 아니며 ‘민정’이의 일란성 쌍둥이이거나 매우 닮은 여자로 소개한다. ‘민정’은 남자를 쥐락펴락하는 ‘요물’ 같다.

▲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스틸. (제공: ㈜영화제작 전원사)


홍상수식 뜬금포 고백은 이 영화에서도 나온다. 남자들은 ‘민정’에게 “정말 예뻐요”라고 말하고 ‘민정’은 “정말 귀여워요. 머리가 하얗지 않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래도 귀여워요”라며 좋아한다. 이쯤 되니 ‘민정’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느낌이 좋고 있는 그대로의 예쁜 ‘민정’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는 시원하게 ‘민정’이 ‘민정’인지 아닌지 답을 주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인절미를 먹는 듯한 답답함이 계속된다. 그게 이 영화의 묘미라면 묘미다.

‘민정’은 그런 남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현재 눈앞에 있는 여자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존중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오만함에 대한 일침이다. 어쩌면 홍 감독은 특유의 지질한 남성 캐릭터(영수)의 모습을 들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이 메시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영화는 지난 10일 개봉돼 상영되고 있다. 러닝타임은 86분.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