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대변인을 자처했던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구 한기총‧한교연이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이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등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설립 당시부터 정권과 하나 돼 움직였던 한국교회가 대통령이 힘을 잃자 일찌감치 새로운 권력을 찾아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고(故) 최태민 목사로부터 시작된 한국교회와 박근혜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을 조명하고 한기총 등의 최근 행보를 정리했다.

 

▲ 1987년 6월항쟁이후 최대인 100만명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2일 서울광장. 이날 참석자들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을 외치며 대통령 퇴진을 촉구했다. 한편 최근 대통령 개헌 발언에 낯 뜨거운 지지성명을 냈던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구 한기총·한교연 등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이후 대통령 퇴진으로 입장을 바꿔 촛불집회에 동참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정치와교회①-권력 따라 이동하는 철새
최순실 사태 직전, 대통령 개헌 발언에 쌍수들고 환영하더니
여론 악화되자, 한기총‧한교연 한목소리로 대통령 퇴진 촉구
박 대통령과는 선 긋고, 애먼 새누리-신천지 엮어 마녀사냥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초기 여론의 관심은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 개신교계 보수세력과의 연관성에 쏠려 있었다. 최순실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이 최씨의 아버지인 ‘최태민 목사’로부터 시작됐기 때문이다.

최 목사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박 대통령의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피살돼 사망한 후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던 박 대통령에게 이듬해 3월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니 가서 그녀를 도우라’고 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은 이 편지를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박 대통령을 만난 뒤 최 목사는 1975년 4월 ‘대한구국선교단’을 설립했다. 그해 5월 ‘구국기도회’와 6월 산하 조직인 ‘대한구국십자군’ 창군식 등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최태민 목사의 제안으로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됐고 구국선교단 행사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1976년 박 대통령은 최 목사가 여러 단체를 통합해 만든 ‘새마음봉사단’의 총재가 됐다. 최태민 목사의 5녀인 최순실씨는 새마음봉사단 대학생회장으로 박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

◆내로라하는 대형교회 신도 최순실… 목회자 꿈꿨던 朴

최순실 국정개입 논란이 불거지고 그의 아버지 최태민 목사의 종교가 화제가 되자 개신교계는 재빨리 선 긋기에 나섰다. 한국교회언론회는 지난 10월 26일 논평을 내고 “성직자 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사람을 ‘목사’로 부르는 것은 정통 교단 성직자에 대한 모독이자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최태민 ‘목사’ 호칭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최 목사가 197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사실은 기독교 언론 등에 의해 밝혀졌다. 개신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최 목사는 구국선교단을 설립해 목사 신분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최순실씨 가족도 2000년경부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형교회에 등록, 출석해 왔다.

이러한 사실은 최씨 가족이 다니던 한 교회 주보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압구정동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A교회 주보에는 최씨 가족이 헌금하며 “2014 아시안게임에 당선되게 해주세요(2012년 2월 19일, 정유연)” “승마대회에서 금메달 딴 것 감사드리며 건강 주셔서 감사합니다(2012년 4월 22일, 최순실 정유연)” “삼성동 건물이 팔리게 도와주소서(2015년 4월 12일, 최순득)”라고 적은 기원 글이 남아있다.

최근 모 기독언론은 박근혜 대통령도 한때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했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1980년대 초·중반 서울 마천동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종합총회) 총회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가 1981년 9월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해 11월까지 다녔던 것도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가 1989년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안에 세운 근화교회에 박 대통령이 한때 열심히 다녔던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태민 목사와 그의 딸 최순실 그리고 한 때 목회자를 꿈꿨던 박근혜 대통령. 수십년에 걸친 그들의 인연에는 ‘개신교’라는 종교적 공통분모가 존재하고 있음이 드러나 최순실 사태 연관성에서 벗어나고자 선 긋기에 바쁜 개신교계의 노력이 무색한 상황이다.

◆“우리 대통령님께서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실까”

박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승리에 1등 공신인 개신교 보수 세력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개신교계 보수 세력들도 박 대통령을 한없이 치켜세우며 그의 권력 유지에 힘을 보태왔다. 지난 3월 3일 열린 48차 국가조찬기도회가 개신교 보수 세력과 박 대통령과의 밀접한 관계를 방증하는 대표적 행사다.

기도회에서 소강석 목사는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개성공단 중단까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7일 청와대를 방문한 기독교 원로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 오른쪽 첫번째)와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 오른쪽 두번째)를 만나 국정현안에 관한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경기도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소 목사는 “세계의 몇몇 유명 여성 정치인들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차별화됐다”며 “우리 대통령님께서는 여성으로서의 미와 모성애적인 따뜻한 미소까지 가졌다”고 아부성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어 소 목사는 “각자의 생각이 다른 5000만명을 섬기고 수백 개국과 정상외교를 해야 하며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정운영을 하시는 대통령님께서는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실까 생각해 본다”며 박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지난 7일 박 대통령은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고견을 들으려고 종교계 인사들과 만났지만 이 중 세월호 참사 때 망언 논란을 빚은 개신교 목사가 포함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천주교 염수정 추기경, 오후에는 개신교 원로 김장환(극동방송 이사장)목사와 김삼환(명성교회 원로) 목사를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들 중 김삼환 목사는 지난 2014년 주일예배 설교에서 “하나님이 (세월호를) 공연히 이렇게 침몰시킨 것이 아니다. 나라가 침몰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은 그래선 안 되니 이 어린 학생들, 이 꽃다운 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국민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며 “누구 책임이라는 식으로 수습할 것이 아니라 온 나라가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애통해하고 눈물 흘리며 우리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삼환 목사는 지난 2014년 열린 제46회 국가조찬기도회에선 “대통령이 하나님의 고르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것을 믿는다. 훌륭한 여성 대통령이 뽑힌 것은 100% 교회의 영향”이라며 “가정이 없는 박 대통령은 오직 대한민국이 가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헌법 개정 제안을 할 때도 보수 개신교계 양대 연합기구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곧바로 환영 성명을 냈다. 한기총은 “개헌에 대한 대통령의 용단을 환영하며 적극 지지한다”고 했으며 한교연도 “어느 정파의 유불리와 정략적 손익 계산을 떠나 우리 사회가 미래를 항해 나아가는 데 있어 개헌 문제를 반드시 풀어야 할 시점이 됐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개신교 관련 행사와 발언 등을 통해 ‘정치화된 종교, 종교화된 정치권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보수 개신교계와 박 대통령이 밀접한 관계라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 “이젠 모르는 사이” 발 빼는 교계… 새누리당과 특정교단 엮어 마녀사냥

박 대통령에게 이렇듯 아부성 발언을 쏟던 개신교계는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박 대통령에 비난을 퍼부으며 등을 돌렸다. ‘친정부’이자 지지층이던 이들이 ‘대통령 퇴진’ 같은 수위 높은 발언도 연일 내고 있어 현 정권과 결별 수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기총은 지난 1일 이영훈 대표회장 명의로 발표한 ‘우리의 결의’라는 성명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큰 혼란 속에 빠져 있다”며 “특검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한교연도 2일 조일래 대표회장 성명을 통해 “최씨가 청와대를 무시로 드나들며 국정을 농단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허용했기 때문”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이 최순실이라는 비선 측근이 아닌 자신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음 직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먼저 대통령이 나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특히 최순실 국정개입 사태로 그동안 친밀관계를 유지해오던 박 대통령이 국민적 지탄을 받게 되자 이들이 기독언론과 특정인을 앞세워 애먼 특정교단(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신천지)과 특정정당(새누리당)을 무리하게 연관 짓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관련해 최근 신천지는 보도자료를 통해 “특정 세력이 정치적 혹은 종교적 의도를 가지고 악의적 소문을 유포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단체장은 “최태민 목사로부터 시작된 국정농단 사태와 개신교계를 연관 짓는 여론이 점차 확산되자 이틈에 급성장세로 개신교계를 압박하는 신천지와 새누리당을 연계시켜 양측을 매장시키려는 논의가 한기총 내부에서 적극 진행되고 있다”면서 “여당과 대통령으로부터 얻을 게 없어졌다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야당과 적극 접촉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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