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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시골길을 걸어가다 보면 마을 또는 사찰 입구에 나무와 돌로 만들어 세운 장승을 볼 수 있다. 도시에서는 쉽게 접할 수는 없지만, 투박하면서도 자상한 모습 등 해학미가 넘쳐 보이는 장승들이 정답기만 하다. 장승은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 목장승은 솟대에서, 석장승은 선돌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기원은 알 수 없다.

동네 어귀에 서서 잡귀를 쫓고 액운을 막는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장승은 지역 간의 경계표시 또는 이정표 구실도 했다. 장승의 명칭도 여러 가지인데, 조선시대에는 한자로 ‘후’ ‘장생’ ‘장승’ 등으로 썼으며 지방에 따라 달리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루며, 남상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천하대장군’ ‘상원대장군’이라 새겨 있다. 여상은 관이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등의 글이 새겨 있다. 때로는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대상으로서의 민간신앙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신앙의 대상이기 때문에 장승은 신성시되며, 함부로 건드리거나 손대지 않았다. 동방청제장군·남방적제장군·북방흑제장군·서방백제장군으로 4개의 장승을 깎아 마을 사방에 세우고 고사를 지내는 지역도 있다. 문화재로는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 국장생 석표가 보물 제74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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