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국무총리 인선 문제로 정국이 표류하고 있다. 지난 8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국회로 가서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뒤 “국회가 추천하는 총리 후보자를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새 총리에게 행정부를 실질적으로 통할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물론 이 발언은 이전보다 다소 진전된 제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발언은 야권의 요구와는 거리가 멀었다. 야권은 국회에서 추천하는 총리에 더해서 새 총리에게 실질적으로 국정운영을 맡겨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는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에서 사실상 2선으로 물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2선 후퇴는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가능한 ‘정치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자신의 행보와 새 총리 권한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야권은 박 대통령의 총리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거부한 것이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10일에도 야권을 향해 박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에서의 총리 추천을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야권은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총리 권한과 박 대통령의 향후 위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면서 12일 열리는 촛불집회에 야3당도 참석하겠다며 더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차적인 문제는 청와대가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야권 대응의 옳고 그름은 더 따질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박 대통령의 향후 위상과 새 총리의 권한을 야권이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이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치적 논쟁만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두 번의 대국민담화에서도 자신의 위상과 새 총리에 대한 권한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국민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언급조차 없었다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갑자기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지 않았다. ‘국회 추천’과 ‘행정부 통할’ 얘기만 반복했을 뿐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야권이 협상장에 나올 수 있겠는가.

헌법 테두리 안에서 새 총리에게 실질적인 국정운영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선언’ 외에는 방법이 없다. 헌법 규정대로 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무회의 의장도 대통령이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책임 총리’ 운운하는 것은 허상에 불과하다. 진심으로 새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박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겠다면 ‘대국민선언’을 통해 정치적 결단을 해야 한다. 지금 야권은 그것부터 하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지금의 난국을 조금이라도 수습하겠다면 야권의 목소리에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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