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아바타인가 꼭두각시인가. 최태민 최순실 박 대통령의 관계 속에 드러난 일련의 과거행적은 주술적 관계 속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데 힘이 실리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꼭두각시보다 아바타에 더 가깝다. 그런 측면에서 비선실세 내지 국정농단(나라의 정치를 한 사람이 유리한 위치에서 이익과 권력을 차지하는 것)의 주범으로 주목 받는 최순실 검찰출두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들의 포토라인까지 무너뜨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연출했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유치함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으며, 허탈 좌절 허무 무기력 나아가 우울증까지 겪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그러나 좌절은 전화위복의 글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바로 민족의 감추어진 에너지 곧 저력이 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명 ‘최순실 게이트’ 또는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잠자던 나라와 백성을 깨운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난국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평생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권성(전 재판관, 언론중재위원장) 변호사의 자서전 ‘흥망유수(興亡有數; 역사에 묻힌 국가 흥망의 비밀)’를 읽으면서, 중국 한나라 때 황석공이 지은 ‘소서(素書)’에 기록된 글을 정리해 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인용된 글을 통해 작금에 일어난 국난과 같은 나라의 비극이 왜 있게 되는지를 엿보게 됐다.

살펴보면 ‘여알공행자 난(女謁公行者 亂)’ 즉,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책임 모르는 여자가 아뢰는 대로 공사를 처리하면 질서를 어지럽히는 것이고, ‘위인택관자 난(爲人擇官者 亂)’ 즉, 재능이나 인품에 따라 관리를 임용하지 않고 사사로운 관계에 따라 관리를 임용하면 어지러워지고, ‘위국무현인 나정무선인(危國無賢人 亂政無善人)’ 즉, 위태로운 나라에 어진 사람이 머물지 않으며 어지러운 정사를 펴는 곳에 착한 사람이 있지를 않으며, ‘애인심자 구현급(愛人深者 求賢急)’ 즉, 백성 사랑하기를 깊이 하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을 찾는 데 급하고, ‘낙득현자 양인후(樂得賢者 養人厚)’ 즉, 현인을 얻기를 즐거워하는 사람은 사람 기르기를 후하게 하고, ‘국장패자 사개귀(國將覇者 士皆歸)’ 즉, 국가가 장차 패권을 잡을 때가 되면 선비들이 모두 찾아오고, ‘방장망자 현선피(邦將亡者 賢先避)’ 즉, 나라가 장차 망할 조짐이 보이면 현인이 먼저 피해 떠나가고, ‘보약자 국경(輔弱者 國傾)’ 즉, 재상이 약하면 나라가 기울고, ‘인곤국잔(人困國殘)’ 즉, 백성이 지치면 나라가 멸망하며, ‘여복거동궤자 경(女覆車同軌者 傾)’ 즉, 뒤집어지는 수레의 바퀴자국을 따라가면 기울어지고 잘못하는 사람을 따라 다니면 역시 잘못을 범하게 된다. 이 같은 현자(賢者)의 가르침에서 세상만사 원인 없는 결과가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자업자득’이란 말도 있으니 남 탓만 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나는 아무런 책임도 잘못도 없단 말인가. 굳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난무하는 찌라시는 물론 각종 매체를 통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은 알면서 왜 방관하고 방치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라의 위기를 기다렸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러면서 지금은 일정 거리를 두며 같은 무리가 아닌 척 하는 사람, 또는 국정 책임추궁과 수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혼란을 선동하며 정권타도의 대열에서 정의를 외치며 온갖 의인의 행세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은 위선자요 참으로 비겁한 사람이다.

보수언론은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알았다면 왜 지금인가. 일제치하에서부터 정의보다 일정(日政)이라는 권력의 그늘에 있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오늘날 보수언론은 그 DNA를 좇아 늘 권력의 편에 서 왔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다.

어용(御用;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나 그 밖의 권력 기관에 영합하여 줏대 없이 행동함을 낮잡아 이르는 말)화 된 언론의 그 지저분한 전통은 오늘의 이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을 견인해 왔다면 부정할 것인가. 현 여당과 정부의 정권 재창출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일 때, 어용언론은 과연 어떤 먹이를 찾아 나섰을까. 정권교체가 가능해 보이는 미래 권력에 필요한 게 뭘까.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더라도 이미 식물 정권에 가까운 현 정권과 여당에는 어떤 미련도 남을 이유가 없어졌을 것이다. 그뿐이겠는가. 태생부터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한기총 즉, 장로교를 필두로 한 보수 기독교단과 같은 정치권력과 하나 된 종교 기득권은 이 순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한국 종교와 보수언론이 걸어온 지난날이 이 같은 진단을 충분히 가능케 했으니 할 말이 있을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박 대통령과 현 정권 그리고 여당은 국민들에게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죄를 지었음을 명심하고, 나아가 그 심각성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고, 지금이라도 진심어린 사죄와 명명백백 사실과 진실을 밝혀야 한다. 권력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며, 꼬리를 끊으려 하지 말고 ‘양심’ ‘솔직’이라는 단어에 충실하는 길만이 사는 길이다. 더 이상 국민들의 아량을 기대한다면 큰 재앙만 더해질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난에 버금가는 금번 사태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운 사람은 없으며 모두가 죄인이라는 점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국가가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면 정치논리를 떠나 균형감각을 살려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정치논리며 정치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이, 화를 복으로 전환시킬 줄 아는 위대한 국민으로 거듭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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