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회담 관련 일본측 문서.(연합뉴스)

(도쿄=연합뉴스) '(한일청구권협정) 체약국 및 국민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어떤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 양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

1965년 6월에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이하 한일협정) 제2조에 포함된 이 문구는 이후 45년간 한.일간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었다.

쟁점은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이다. 한국 정부가 당시 일본으로부터 수억 달러를 받은 것으로 위안부나 징용피해자 등 개인의 권리침해까지 '해결'된 것일까.

일본 정부의 입장은 그동안 끊임없이 바뀌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시에는 개인청구권에 대해 추가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고, 1990년대까지는 "한일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이 미국 법원에 낸 소송에선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까지 포기됐다"고 주장했는가 하면 조선인 근로자들의 미지급 임금과 한일협정 당시 무상 3억 달러 지원금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피해가기도 했다.

일본 법원의 판결도 수없이 바뀌었다.

때로는 "한일협정과 일본 국내법에 따라 포기됐다"고 판단하기도 했고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판결한 적도 있다.

최고재판소(대법원)가 2007년 4월 "국가간 조약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실체적 권리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재판상 청구권은 소멸됐다"고 판시한 뒤로는 소송을 내지 말고 일본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자발적인 보상을 받으라는 취지의 판결이 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본 외무성이 1965년 협정 체결 전후에 한일협정과 개인청구권의 관계를 법률적으로 검토한 결과를 담은 내부 문서가 공개된 것은 당시 일본 정부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문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당시 한국 정부가 선포한 '평화선'('평화라인')을 넘었다가 나포된 일본 어선의 선주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가능성을 검토한 끝에 이런 법률적인 검토를 하게 됐다.

법률적 의미도 있다. 징용피해자 소송 일본측 변호인단은 "한일협정에서 '청구권의 포기'는 외교보호권의 포기일뿐이고, 개인청구권은 조약 체결국(한일 양국)의 국내 조치에 의해 처분될 것"이라는 취지가 포함된 점을 특히 중시하고 있다.

일본 변호사들은 "논리적으로 볼 때 이런 해석의 효과가 일본인(선주)에게만 해당하고 한국인에게는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 내부문서는 전체적으로 볼 때 한일협정에서 포기된 청구권이 국가의 외교보호권에만 해당되고 징용피해자의 청구권과는 관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 정부가 협정 체결 직후인 1965년 12월 한국(조선)인 개인의 일본내 재산권을 소멸시키는 특별조치법을 만든 배경에도 이런 검토가 있었다는 걸 추측할 수 있다.

이 특별조치법은 외국인의 재산권을 한일협정 체결일을 기준으로 소급해 소멸시킨다는 그야말로 초법적 법률이었지만 이후 일본 법원이 "국내법에 따라 개인청구권이 소멸됐다"고 판단하는 근거로 활용됐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더 중요한 건 한일회담 일본측 관련 문서를 완전히 공개할 필요성이 확인됐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08년 공개한 문서는 모두 6만쪽에 이른다. 한일 시민단체와 법조계는 그동안 이들 문서의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관련 문서의 의미가 속속 드러남에 따라 일본측은 추가 공개 압력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외교 전문가들은 일본 외무성 내부문서의 의미가 속속 드러나는 데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문서의 내용을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관심을 보였다.

회의적인 반응도 없지 않았다. 한 외교 전문가는 개인 견해임을 전제로 "당시 법률적 해석이야 어찌 됐든 1965년 한일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사실상 포기한 셈이 됐고, 2005년부터는 국내 구제 조치도 취하고 있다"며 "이제 와서 다시 논의하는 게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징용피해자 소송을 맡고 있는 최봉태 변호사는 "필요할 때마다 말을 바꿔온 일본 정부가 한일협정 체결 직전에 내부적으로 법률관계를 검토한 뒤 개인청구권이 협정 체결후에도 유효하다고 결론을 내린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본도 한국처럼 한일회담 관련 문서를 전면 공개해야 할 것"이라며 "하토야마 정부가 미.일 밀약 관련 문서는 모두 공개하면서 한일회담 관련 문서는 왜 전면 공개하지 않느냐"고 일본 정부를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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