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부의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 한글번역본 표지(왼쪽)와 내용 일부 (제공: 서강대)

선문대 유춘동 교수, ‘금남표해록’ 한글번역본 처음 공개
대부분 한문본, 그동안 유일한 한글본은 국립중앙도서관본뿐
발견된 서강대 소장본, 이보다 1세기 앞선 18세기 무렵 나온 것
한문 읽는 계층 이외에 국내서 읽히지 못했다는 주장은 재고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18세기 무렵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최부(崔溥, 1454~1504)의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 한글번역본이 새롭게 발굴됐다.

그동안 금남표해록은 한문본이 대부분이었으며, 유일한 한글본은 19세기에 필사된 국립중앙도서관본 뿐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에 발굴된 서강대본 금남표해록은 한문을 읽을 수 있던 양반사대부 계층 외에 국내에 널리 읽히지 못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재고해 보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금남표해록’이란

최부의 금남표해록은 국내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유명한 책이다. 이 책은 성종 18년(1487) 제주의 추쇄경차관으로 부임했던 최부가 다음 해인 1488년 정월에 부친상을 입어 고향인 나주(羅州)로 급히 귀환하던 중에, 제주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면서 겪었던 일들, 중국 절강(浙江) 지역에 도착한 뒤로는 왜구(倭寇)로 오인 받아 고초를 겪었던 일, 이후 신원(伸寃)이 돼서 중국의 강남(江南)과 강북(江北) 지역을 거쳐 6월에 국내로 돌아오기까지, 총 6개월의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한문본, 국내외서 심도 있게 연구

그동안 최부의 금남표해록은 국내외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고, 다양한 연구가 이뤄졌다. 국내에서는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문학연구자들의 연구가 있었다. 작품의 기초 해제부터 원전(原典)의 번역, 이본 연구 및 교감 작업, 기행 문학과 해양 문학 측면에서의 조명, 콘텐츠로서의 활용 방안, 글쓰기의 방식, 금남표해록의 문학적 성격 규명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많은 연구가 축적됐다.

외국에서는 국내 연구진보다 먼저 표점본(標點本) 및 교감본(校勘本)의 작업, 작품에 나타난 15세기 중국의 경제와 문화, 생활 풍속, 강남지역 도시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에도시대(江戶時代)에 이 책이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라는 제목으로 개명돼 많이 읽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는 상업출판물인 방각본으로 간행됐다는 점, 중국의 주요 기행문 중의 하나라는 인식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처럼 금남표해록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도 심도 있게 연구됐다.

◆기존 확인된 한글본보다 1세기 앞선 서강대 소장 ‘금남표해록’

문제는 이 책을 한글로 번역한 한글본 금남표해록에 대해서는 그동안 이렇다 할 진척된 논의가 없었다.

그 이유에 대해 선문대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유춘동 교수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진 한글본은 19세기에 필사된 국립중앙도서관본 한 종뿐이기 때문”이라며 “최부의 금남표해록은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있었던 양반사대부 계층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널리 읽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정설처럼 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새로 발굴한 서강대본 금남표해록은 기존의 주장을 재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며 “서강대본은 기존에 확인된 19세기 한글본보다 한 세기 앞선 18세기 무렵에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강대본 한글본, 한문본 금남표해록의 ‘축약번역본’

특히 이 자료(서강대본)에서 주목할 점은 한문본 금남표해록의 축약번역본이란 점, 필사자가 직접 번역한 게 아니라 선행했던 한글본을 가져다가 재필사한 본이란 점이다.

이러한 서강대본의 성격을 볼 때, 기존 학계의 정설과는 다르게 한글로 금남표해록이 다양한 형태로 번역돼 존재했고, 이러한 번역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읽혔던 정황이 포착된다.

한문으로 쓰여진 최부의 금남표해록은 제주 앞바다에서 표류한 뒤로 귀국하기까지 6개월에 걸친 노정을 긴 분량으로 서술해 놓았다.

그러나 이번에 발굴한 한글본 금남표해록은 이러한 긴 내용 중에서 ▲최부가 생사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살아나는 부분 ▲명나라 황제를 만나 위로를 받는 부분 ▲이후 무사히 귀국하는 과정만을 담게 됐다. 즉, 새 자료에서는 ‘주인공의 표류-주인공의 표류에서의 위기 극복-주인공의 무사 귀환’이라는 내용만을 보여주게 됐다.

유 교수는 “한글로 번역된 금남표해록을 읽었던 독자들의 관심이 무엇이었던가를 보여준다”며 “이 작품을 필사해서 읽었던 독자들은 한문으로 된 원전을 읽을 수 있던 독자들과는 다르게, 낯선 중국의 문물과 문화, 중국의 풍경, 지식인으로서의 최부의 모습보다는 죽음의 위기에서 극적으로 벗어나 마침내 삶을 되찾고 귀국한 모습에 더 관심을 보였다”고 전했다.

차후 금남표해록을 연구할 때 새로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유 교수는 ▲이국(異國)의 문화 ▲풍경에 비중을 두고 작품의 해석 ▲수용에 대한 연구를 하기보다는 ‘표해록’이라는 갈래를 생각해 ‘급작스런 표류를 맞아 죽음의 위기에 빠진 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한다’는 작품이 지닌 원 구조 등을 꼽았다.

또 주인공이 살아나기까지의 극적인 감동, 이후 고난을 극복한 뒤에 얻은 재미 등에 초점을 둬 연구하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같은 내용은 지난 10월 31일에 간행된 ‘열상고전연구’ 53집에서 자세히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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