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민심이 도심을 메웠다. 대통령의 사과와 진정성이 불충분하다는 것이 주요 이유다. 서울 광화문 앞 12만명을 비롯해 부산 대전 광주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조차 하야 촉구 시위가 진행됐다. 중고생들까지 거리로 나왔다. 하야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하던 야권이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일부 야권 의원들은 개인 자격으로 하야 촉구 시위에 참여했다. 대통령 최측근이었다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문제의 모든 사안을 대통령이 가장 잘 알고 있다”면서 “눈속임용 거짓 사죄를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스스로 밝히라”는 뼈있는 말로 대통령을 비난했다.

외신도 심상치 않은 사태를 주시하고 있고, 곧 열릴 APEC 정상회의에 누가 참석할지도 불투명하다. 대통령이 지명한 김병준 총리 내정자는 자진 사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책임 총리로서 소임을 다할 것이라며 야당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 하야 촉구에 대한 공식 입장을 자제해온 언론도 사설을 통해 하야 촉구에 나서기 시작했다.

불충분하지만 대통령은 사죄했고, 검찰 조사는 빨라졌다. 이성적으로 조사결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섣부른 하야 촉구는 나라를 더 어지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이 검찰 수사에 집중돼 있는 만큼 제대로 된 수사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하야 촉구 시위가 있던 지난 4일은 23년 전 성철스님이 입적한 날이기도 했다. 성철스님은 64년간 참선하며 40년간 승복 두벌로 살아 ‘누더기 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를 통해 사물의 형식이 아닌 본질로서 대할 것을 강조했다. 조계사 종정에 오를 만큼 한국 불가에서는 가장 높은 선승의 자리에 있었던 스님은 ‘자신을 바로 볼 것’을 늘 강조했다.

성철스님의 말처럼 자신을 바로 보고 지혜와 결단력으로 대한민국호를 제대로 이끌어갈 선장이 절실하다. 그러나 사실상 선장 잃은 대한민국호가 어떻게 될지 불안할 뿐이다. 4.19 이후 최대 국정 혼란이라고 하는 현 사태를 극복하는 방법은 온전한 진실규명 위에 이뤄지는 사죄다. 대통령의 대국민담화 내용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하야 촉구만이 답이 되고 말 것이다. 진실규명과 그 터 위에 온전한 사과가 이뤄지길 다시 고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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