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불교용어 중의 하나인 ‘열반(涅槃, Nirvana)’은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를 음역한 것인데 ‘취멸(吹滅)·적멸(寂滅)·멸도(滅度)·입적(入寂)’ 등으로도 번역된다. ‘열반’의 본래 뜻은 ‘소멸’ 또는 ‘불어 끔’이며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멸진(滅盡)하여 깨달음의 지혜인 ‘보리(菩提)’를 완성한 경지”를 의미한다. 열반은 생사(生死)의 윤회와 미혹의 세계에서 해탈한 깨달음의 세계로서 불교의 궁극적인 실천목적이다.

다시 말해 열반은 “모든 번뇌의 얽매임에서 벗어나고 진리를 깨달아 ‘불생불멸’의 법을 체득한 경지”를 가리킨다. 궁극적인 깨달음은 모든 불교도의 궁극적인 이상이며,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없애고 욕망을 제거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이 깨달음은 8정도(八正道)로 알려진 정신적 수련 과정을 밟음으로써 성취된다.

최초로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무소불위의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렸던 중국의 진시황제는 영원불멸을 꿈꾸며 유난히도 삶에 집착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불노초’를 얻지 못하고 50세에 삶을 마감했으며 그가 건축하던 아방궁도 완공을 보지 못한 채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기독교 성경에서 누가는 영화로웠던 솔로몬 왕의 덧없는 삶에 대해 이렇게 전하고 있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눅 12:27)”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영생(永生)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영생에 이르는 진정한 앎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예수는 그의 제자 마태를 통해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마 11:27)”고 했다.

결국 불교의 열반이 8정도의 길로 성취되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영생은 ‘계시’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그가 보낸 목자를 온전히 앎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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