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선사 주지 법안스님은 민초들의 인권을 이해 달려온 날들을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 사회에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어떻게 붙들고 가야 하는지 배우고 나눈 것 자체가 큰 경험이자 교훈이었습니다.”

지난 2월 6일, 3년 동안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 임기를 마친 법안스님(속명 정재근)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다.

불교계의 대표적 실천적 단체인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전 대표이자 서울 구기동 삼각산 자락에 위치한 금선사의 주지이기도 한 법안스님의 이력은 화려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총무국장·기획실장, 참여연대 운영위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상임위원, 백두대간보호위원회 위원,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민족의화해와통일을위한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서울시 전통사찰 보존위원장,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위원장 등 손으로 꼽기에도 힘겨울 정도다.

이렇게 화려한 이력을 가진 스님이지만 그의 삶은 소박하다. 흔히들 스님이라고 하면 세상과의 연을 끊고 산 속에서 수행하며 살아갈 것 같지만 법안스님은 오히려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길 마다하지 않는다.

“저자 간의 민초들, 보호와 안전의 사각지대에 사는 이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고통 받고 신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구도자의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중생을 교화시키는 것, 그들과 기쁨과 어려움을 함께하는 것이 미약하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도자의 삶이자 보살행(보살이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것으로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는 원만한 행동)입니다.”

“보살행을 할 때 구도자는 행복하다”는 스님에게 세상은 끊어야 할 속세가 아니라 품고 가야 할 업(業)이다. ‘업’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지고 가는 힘든 삶의 무게가 아니라, 기쁨으로 보듬고 가는 가족이다.

스님은 그렇게 사회적 약자들의 가족으로 살기 위해 3년 동안 ‘법안’이라는 법명 대신 ‘정재근’이라는 속명으로 살면서 사회적 약자·소수자의 진정을 듣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을 내리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지난 3년을 스님은 ‘행복했다’는 말로 정리했다.

스님은 “깨달음을 지향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중생의 고통을 같이 하는 삶을 살아갈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민초들을 위한 일을 할 때에 많은 것을 배웠고 수행자의 길을 더 곧게 가라는 가르침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했다.

▲ 삼각산에 자리잡은 금선사. 그 안에 작은 풍경소리가 산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산사의 정취를 느끼게 만든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민초 위한 일 통해 깨달음 얻어

스님은 비단 사회 문제만을 다루지 않는다. 서울시 전통사찰 보존위원장이자 불교미래사회연구소장이기도 한 스님은 소통과 나눔, 자연과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지난 2월 조계종이 평양을 방문해 북측의 국보급 사찰부터 전통사찰의 복원보수를 시작하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먼저는 분단 60여 년 동안 이질화된 것을 동질화시키고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말 그대로) 오래된 사찰만 900여 개 정도가 된다. 그 중 서울에만 50여 개의 사찰이 있는데 후에 모두 문화재가 될 것들”이라며 “사찰 안의 법당, 전각, 탑, 부처님 상에는 선조들의 정성과 열정, 고통이 깃들어 있는 것은 물론 그 시대의 삶의 양식이 총체적으로 모아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전통과 문화가 함께 스며든 곳이 바로 전통사찰이라는 것이다. 스님은 더 나아가 문화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고취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님은 사회 속 종교, 즉 문화를 만들어가는 종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종교와 사회 간 불신과 갈등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종교가 먼저 앞장서야 한다. 사회와 내가 결코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종교인이라면 체제나 이념을 떠나 문화와 종교, 민간 차원에서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며 “북한과의 교류도 겨울에 꽁꽁 얼었던 얼음이 봄볕에 녹아내리듯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 불교미래사회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법안스님은 불교미래사회포럼을 통해 사회와 종교 간 소통과 나눔의 장을 펼쳐나가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부처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

다양한 사회문제를 불교의 눈으로 바라보고 부처님의 사상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2007년 발족한 불교미래사회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법안스님은 “미디어법, 4대강사업, 세종시, 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인해 작금의 시대는 소통과 나눔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때”라고 입을 열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사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순, 갈등, 대립을 올바르게 제시하고 싶다”며 “사회 여러 문제를 불자들이 먼저 인식해서 풀어나가자는 취지로 연구소 내에서 포럼을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스님은 4대강 문제에 대해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에 자연 앞에 겸손해야 한다. 오만해서는 안 된다”면서 “자연이든 사람이든 서로의 존재는 수평적인 관계이지 어느 한 쪽이 우월적인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인간이 개발, 관광 등 편리함만을 추구하고자 자연을 파괴하고 있을 때 ‘우리들을 편하게 놔주세요’라고 외치는 생명체들의 생각과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며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은 하나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종교는 사회 약자들의 위안처

스님은 국민들의 인권을 위해 살아왔던 세월이 큰 교훈이자 경험이었다고 고백했다.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마다 “더욱 자비로워지는 것 같았다”고 말하는 스님. 스님이 산에서 세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은 꾸준한 자기성찰과 자기의 마음을 내려놓는 무심(無心) 때문이었다.

스님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통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고통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여기에는 전제되는 것도 계산되는 것도 없다. 다만 진실한 마음이 필요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참으로 많은 부분, 사회 곳곳에서 인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스님에게 대단하신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니 스님은 “당연한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을 위한 일련의 일들이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을 때는 이미 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닌 것”이라고 답했다.

스님의 활동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혹자는 ‘스님이 너무 사회활동에만 전념하는 거 아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법안스님은 시대에 맞는 불교교단의 바람직한 삶을 위해서도 당신의 여력을 쏟아 붓는다.

특히 노후에 마땅한 쉼터가 없는 스님들을 위한 대책마련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스님들의 출가에서부터 입적까지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제도를 정비하고, 승가제도가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 인터뷰 내내 직접 차를 우려내 기자들에게 대접해주신 법안스님은 “보살행을 할 때 구도자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마지막으로 스님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당신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스님은 “종교가 많이 넉넉한 자들의 입장도 생각해봐야겠지만 소수자, 약자, 사회제도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의 위안처가 돼야 한다”며 “종교가 종교 본연의 일을 해야 종교로서 인정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부처님도 예수님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이정표를 제시하셨다”며 “종단도 수도자 개인도 이와 같은 부분에서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덧붙여 “종교의 권력과 위상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사회적·국민적 신뢰도는 떨어지게 된다”며 “종교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지에 대해 성찰해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종교에 귀의해 산 속으로 들어갔지만 중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안쓰럽고 애달파 산 밑으로 내려와 그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마다하지 않은 스님.

사람 사이 그 누구도 높고 낮음이 없고, 자연과 인간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스님의 말에 앞으로 스님이 걸어갈 길이 더욱 궁금해지고 기대가 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