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역사 완전히 이해해야 좋은 번역 나와”
“드라마 번역 통해 한국 소개하는 사명·책임감 있어”

▲ <대장금> 등 80여 편의 한국드라마를 번역한 대만인 동문군 씨. ⓒ천지일보(뉴스천지)
◆<대장금> 중화권에서 히트 시킨 장본인

2005년 드라마 <대장금>은 홍콩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중화권 전체에 영향을 끼치며 잠시 침체됐던 한류의 물꼬를 다시금 트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이 대장금이 본래 이전에 중국에서 먼저 방영됐을 때는 인기몰이에 실패한 바 있다. 사극의 경우 고어체가 많이 쓰이기 때문에 번역 과정에서 이를 그대로 중국어 고어체로 느낌을 살리지 못하면 드라마의 재미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처음 번역돼서 방영됐을 당시에는 이 같은 번역상의 문제로 인해 대장금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만인 동문군 씨의 번역으로 맛깔스럽게 재탄생된 대장금은 홍콩에 이어 중국에서 재방영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모으는 데 성공했다.

아울러 동문군 씨는 12년 동안 사극 <명성황후> <장희빈> <해신> <황진이> <서동요> 등 다수의 작품을 비롯해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 <커피프린스 1호점> <뉴하트> <가인과 아벨> 등 모두 80여 편을 번역해 한국드라마가 중화권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데 도움을 줬다. 그야말로 중화권에 한류의 물꼬를 튼 장본인이었다.

특히 그는 더욱 좋은 번역을 위해 몇 년 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김정배) 한국학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한국고전소설을 전공했다. 졸업논문으로는 ‘한국드라마와 중국어 번역연구’에 대해 썼으며, 지난달 22일 박사학위를 취득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드라마 <대장금>의 한 장면. (사진: MBC)

◆한국서 태어나 자라 한국말 능통 

2차 세계대전 말 그의 부모는 한국으로 내려왔고, 이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동 씨는 대구의 화교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경상도 사투리도 제법 한다고 한다. 이후 그는 대만 정치대학에 진학한 뒤 한국 기업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했다. 간단한 서류 작업만을 번역하던 중 그는 한 프로덕션 회사에서 한국드라마 번역 요청이 들어와 이때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드라마 번역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 첫 번역했던 드라마가 채시라, 채림 주연의 <여자만세>였다. 동 씨는 “번역본이 잘돼 있어야 더빙하는 시간이 적게 걸린다. 그래서 더빙 배우들은 내가 번역한 것을 좋아했다”면서 “프로덕션 회사에서도 번역은 나한테 부탁하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라며 웃었다.

▲ 드라마 <명성황후>의 한 장면. (사진: KBS)

◆한국 공부 계기가 된 <명성황후>

그는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2004년 대만 문화대학 한국어과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따냈다. 그러면서 한국어에 더욱 자신감이 붙은 그는 2006년경 다시 한국으로 공부하기 위해 건너오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명성황후>를 번역하면서부터다. 그는 “다들 나에게 한국말을 잘한다고 해서 그간 나도 그런 줄로 착각을 했었다. 그것을 깨닫게 해 준 드라마가 <명성황후>다.

<명성황후>를 번역하면서 나 자신이 한국문화나 역사를 너무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한국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나온다는 생각에 한국학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명성황후>는 그에게 특별한 드라마다.

동 씨는 다시 공부하기 전까지 한국문화나 역사가 중국의 부속이라고만 생각했다. 학창시절 화교학교에서는 대만에서 들어온 교과서로 가르쳤다 한다. “중국의 역사만 배우다 보니, 한국의 문화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형성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부하면서 한국도 한국만의 일맥상통하는 유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몰랐다”며 한국에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한국드라마의 매력은 섬세함과 흡입력

동 씨가 말하는 한국드라마의 매력은 아주 섬세하고 내면의 감정 세계를 잘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드라마에 대해 “남녀 주인공이 주변 인물들과 다 연관돼 있으며, 직업이나 취미 등이 다양한 것은 물론 조연들에 대해서도 아주 섬세하게 소개해 주는 것이 특징”이라며 “내면의 감정 세계를 잘 나타내면서 흡입력이 있는 것이 강점“이라고 꼽았다.

하지만 이같이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중화권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기 어렵다고 동 씨는 말한다. 특히 “한국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번역의 질도 관리해야 한다”면서 “방송국들이 판권을 판 뒤에는 현지에서 어떻게 번역되고 방영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중화권에서 엉뚱하게 번역된 것들이 많아 속상하다”는 그는 “한국 방송국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드라마가 번역되고 방영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진다면 한류가 더욱 지속적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덧붙여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중국어판까지 함께 만들어 팔면 엉뚱한 번역판이 팔리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번역 통해 한국을 제대로 알릴 것

이어 동 씨는 “한류를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번역”이라며 “현재 대만과 홍콩, 중국에는 수십 명의 번역자들이 있다. 이들 현직 번역자들의 실력향상을 위해 한국정부가 직접 나서 전문직 번역자로 양성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야 제대로 된 번역이 나올 수 있고, 아울러 한류가 지속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길이라고 동 씨는 강조했다.

향후 그는 지난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선덕여왕>을 번역할 계획에 있다. 그는 “한국은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번역해서 중화권 사람들에게 소개해 줘야 하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내겐 있다”며 “좋은 번역으로 중화권 사람들에게 한국의 모든 것을 알리고, 한국에 대한 바른인식을 전하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비록 국적은 대만이지만, 오히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동문군 씨의  활동이 중화권에서 한류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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