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란지세(累卵之勢)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그 정점에 있다는 점에서 사태는 생각보다 엄중하고 심각하다. 박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국민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층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에 야당도 노골적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자칫 정국이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닫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확산되던 지난 달 25일, 박 대통령이 깜짝 ‘녹화 사과’를 한 이후 박 대통령은 어디론가 숨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그 흔하던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에서의 발언도 쉽게 듣지 못하고 있다. 파국이 최고조로 치닫던 청계천 촛불시위 즈음에도 박 대통령은 침묵했다. 심지어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를 발표할 때도 박 대통령은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반드시 전면에 나섰어야 할 자리마저 외면한 것이다. 그렇다보니 총리 내정자를 발표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국민과 야권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국민 여론이 두렵고 국민 앞에 나설 기력조차 없다고 하더라도 김병준 총리 내정자를 발표하는 자리만큼은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나섰어야 했다. 왜 김병준 내정자를 발탁했는지, 총리의 권한과 역할을 어떻게 규정했는지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행보는 어떻게 할지를 먼저 국민 앞에 설명했어야 했다. 이 부분만큼은 박 대통령이 직접 밝히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후에 김병준 총리 내정자에 대한 정치권의 협조와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이런 절차가 모두 생략된 채 느닷없이 총리 내정자를 발표하다 보니 국민과 정치권이 선뜻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또 일방통행이요, 국민과 정치권을 무시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제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지금 상황은 내치는 물론이요 외교와 안보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순탄한 것이 없다. 최순실 게이트는 점차 박근혜 대통령까지 파고들고 있다. 따라서 언제까지 이렇게 뒤에서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김병준 총리 내정자가 3일 총리로 내정되기까지의 전후 얘기를 국민 앞에 밝혔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야권의 설득과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실상의 ‘내치 대통령’ 의지를 밝혔지만 그 후의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 당장 오늘이라도 박 대통령이 직접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나서 여야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서 정치권의 협조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깊은 성찰과 진정성이 없으면 지금은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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