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지난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서울 서대문구협의회 소속 청년분과위원회에서 통일독서토론회 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서대문구에 소재하고 있는 연세대학교 통일동아리 대학생들이 패널로 참여해 열띤 토론으로 진행됐는데, 통일독서 토론의 책자로 선정된 것이 바로 북한의 솔제니친으로 불리는 작가 반디선생의 고발 작품이었다. 필자가 소속된 단체에서 고발이라는 소설을 출간해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많은 행사를 치렀지만, 청년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고발 작품을 통일도서로 선정하고 북한주민의 인권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행사를 가진 것은 처음이어서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이른 아침부터 서대문구청으로 모여든 청년학생들에게 필자는 감격에 겨워 이렇게 인사말을 대신했다. “오늘 청년학생들과 꼭 나누고 싶은 점은, 여러분과 같은 또래의 청년시절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가정도 개인의 영욕도 모두 버리고 독립운동에 나선 선조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고난의 길에 동참하셨을까, 북한 공산당이 쳐내려와 동족상잔의 비극이 펼쳐지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장에 나서면서, 파독 간호사와 광부로 남의 나라에 가서 시체닦이를 하면서, 이 더럽고 빌어먹을 나라에 잘못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죽을 고생이나 하고 있구나 하는 심정으로 그 길을 가셨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내가 비록 이 같은 고난의 길을 가지만 지금의 나의 고난이 내 가정과 나라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다시는 우리 자식들과 후대들이 손가락질 받고 빌어먹고, 멸시받는 일이 결단코 없게끔 만드는 데 쓰일 것이기에, 내 앞에 놓인 가시밭길을 기쁘게 가노라라고 분명히 결심하셨을 것이다… 지금 우리 청년들 헬조선이니, 흙수저니 비록 어려운 시기이지만, 이 같은 우리 부모님, 선배 세대의 고귀한 뜻을 결코 잊지 말자”고 말이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된 통일독서토론회는 고발소설이 가지고 있는 슬픈 이야기들에 하나하나 공감해가면서 점차 열기를 더해갔다. 연세대 통일동아리 소속 대학생 중 토론자로 참여한 유일한 여학생은, 탈북기라는 단편에서 같은 여성으로 겪는 북한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언급하며, 연좌제 등으로 유지되는 북한의 계급사회, 계층별 갈등과 좌절이라는 것에 함께 분노했고, 또 다른 참가 학생 중에는 북한주민들에게 있어 저항의식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지, 이러한 저항의식이 왜 조직적으로 형성돼 자신들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행동으로 성장할 수 없는지, 앞으로의 가능성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북한주민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진지한 토론과 질문들이 줄을 이었다.

같은 날 서울시내 한복판에서는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참으로 개념있는 청년대학생들이 북한의 솔제니친 반디선생의 작품을 소재로, 권력의 노예로, 국제사회를 겨냥한 인질의 삶으로 연명하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구출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고 있었으니, 북한에 계시는 반디선생이 이 모습을 보고 뭐라고 했을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지금과 같은 연좌제의 계급사회에서 태어나 되풀이되는 비극적 삶을 살 것만 같은 자식 걱정에 피임약을 복용하며 임신을 꺼리는 북한여성의 모습과, 어린아이의 잘못으로 온 집안이 평양의 특권층에서 하루아침에 지방으로 추방되는 노동당 간부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인정받는 공산당원으로 살아온 거짓 생애에 대해 노동당원 입당기념으로 심어둔 느티나무를 도끼로 쪼개고 심장마비로 쓰러진 늙은 노인네의 일생을 두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하야를 수천번, 수만번 외쳐도 시원찮을 암흑의 땅 북한에서, 오직 남조선만 바라보며 자유의 바람, 통일의 물결이 언제나 밀려올까 노심초사 죽지 못해 기다리고 계실 터인데, 모든 것이 과잉으로 넘쳐나는 남조선에서 한줌도 안 되는 선동세력들에 휘둘리며 나아가야 할 방향마저 잃어버린 것 같은 모습에 애간장을 태우고나 있지 않으실까….

토라스 칼라일이 ‘영웅숭배론’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인간은 역경(逆境)을 이기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한 명도 안 된다고 말이다. 남조선이 북한의 반디선생을 구출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서 깨어난 현인들이 오히려 남조선을 새롭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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