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우리 속담은 국가 간의 일로 의미를 확장해도 기가 막히게 잘 들어맞는 것 같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피겨 금메달리스트인 한국의 자랑 김연아의 성공에 대해 지리적인 이웃사촌 일본 사람들이 몹시 배 아파하는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연아에 무릎 꿇은 은메달리스트 아사다 마오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데 굉장히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일부 일본 언론은 심판들의 채점 모습을 몰카로 찍어 마치 채점에 무슨 잘못이 있는 것처럼 냄새를 피우고 또 어떤 언론은 김연아의 귀고리 착용이 IOC(국제올림픽위원회) 규정에 위배되느니 어쩌니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해댄다.

배 아파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황당한 뒷소리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세계의 어느 언론도 김연아의 완벽한 기량에 대해 한 마디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미국, 유럽, 심지어 중국의 언론까지도 역대 최고의 점수에 걸맞는 최상의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 찬사를 아사다 마오가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더 배가 아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자꾸 엉뚱한 뒷소리들을 해대면 뒤끝만 개운치 않다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자꾸 그러면 아사다 마오의 나라인 일본이나 피겨스케이팅에 더 정진하고 발전해야 할 일본의 아이콘 아사다 마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프고 쓰리더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나라는 큰 나라, 사람은 멋있고 더 크게 될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작고 초라해 보이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김연아의 동갑내기 아사다 마오, 참 훌륭한 선수다. 밴쿠버 올림픽에서의 메달 색깔이 서로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리게는 만들었지만 일본의 자랑이며, 한국이 인정하고 세계가 인정하는 면모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마오는 다른 여자 선수들이 못하는 3회전 반을 도는 어려운 트리플 악셀을 뛰는 선수다. 더 갈고 다듬으면 대성(大成)할 자질이 충분하다. 하지만 이번만은 김연아에게 완벽하게 졌다. 마오는 다음 올림픽에서 금메달에 도전할 것임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새로운 시작에 대한 결의를 보여 주었다. 새로운 시작은 패배에 대해 ‘분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졌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그 점을 마오에게 충고해주어야 할 사명이 있다. 그것이 바른 언론이다. 공연한 소리로 국민감정을 자극하고 이웃사촌의 축제분위기에 재나 뿌리려 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아사다 마오 본인은 물론 뒷소리 하는 일본 사람들은 김연아에게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배워야 할 것은 배우고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은 가르쳐 주어야 서로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서로 발전한다. 일본인들이 이를 모르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김연아의 승리는 완벽했다. 그것은 이미 기량의 울타리를 벗어난 승리다. 세계 유수 언론의 평가에 담겨 있는 진수(眞髓)를 음미해보면 김연아의 승리는 기술의 임계(臨界)를 뛰어넘는 도(道)의 경지에나 얻어지는 승리다. 정신의 승리, 예술의 승리, 담대함의 승리다. 아사다 마오의 기록적인 점수를 보고서도 김연아는 바로 뒷순서인 쇼트프로그램에서 전연 흔들림 없이 그 점수를 가볍게 뛰어 넘었다. 기술적 임계를 뛰어 넘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담대한 정신의 승리다. 아사마 마오는 어떠했는가. 순서가 반대로 된 프리스케이팅에서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의 점수를 보고 이미 주눅이 들어 있었다. 경기 내내 당황하고 실수를 연발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수들이 실수를 많이 하는 점프에 있어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김연아의 점프는 아사다 마오의 것에 비해 훨씬 높고 빠르며 정확하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예술이다. ‘경기를 즐기면서 했다’는 김연아 본인의 말은 음미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기술 자체의 완성도에 매달리는 수준으로는 그러한 예술적인 동작이 나올 수 없다. 따라서 김연아가 자신을 주목하는 시선과 최고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중압감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도의 경지에 들어선 기량과 정신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쓸데없는 트집이나 잡으려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은 냉정하게 비교하고 분석해 아사다 마오가 참고하고 그것을 통해 더 큰 선수로 성장하게 해야 마땅하다.

옛 우리말에는 또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다는 말도 있다. 애들 같은 장난질을 하는 일부 일본 언론들이 새겨둠직한 말이다. 이웃의 경사에 배 아파 하지 말고 한국과 일본이 제발 좋은 이웃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언론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 이에 뭐 다른 할 말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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