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치석 조선왕조문화예술교육연구소 소장

친잠례란, 왕비가 친히 궁궐의 친잠단(親蠶壇, 친잠하는 의식을 거행하는 단)에서 누에의 신 서릉씨에게 풍잠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리고, 뽕잎이 노랗게 돋아나는 봄날 채상단에서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본을 보이는 의식이다. 친잠례는 조선왕조 의궤 중 왕비가 주도해 제사를 올리는 유일한 행사로 역사·정치·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친잠의궤’란

조선은 유교적 예를 중시해 국가행사를 의례화해 문화적인 기틀을 세우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세종 대부터 국가의 전례를 집대성하는 국조오례의를 정비하기 시작해 성종 시대에 완성되고, 영조 시대에 다시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로 수정 보완됐다. 친잠의궤는 국조오례의의 길례 중 하나다. 국조오례의는 길례(吉禮), 흉례(凶禮), 가례(嘉禮), 빈례(賓禮), 군례(軍禮) 등을 말한다.

대사는 종묘, 사직이고, 중사는 친경과 친잠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의례인 것이다. 친경의례는 왕이 친히 농사짓는 본을 보이는 것이고, 친잠의례는 왕비가 친히 양잠의 본을 보이는 행사로 백성의 농사짓는 고통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왕과 왕비의 애민사상을 표출한 것이다.

‘친잠의궤(親蠶儀軌)’는 영조 43년(1767) 3월 친잠례를 거행하기 위해 준비한 의궤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1745~1805)가 경복궁에서 봉행한 선잠제(先蠶祭)와 친잠례(親蠶禮)의 전체 과정을 기록한 의궤다.

◆영조, 왜 친잠례 통해 왕비의 정통성 세우려 했나

영조는 66세(영조 35년, 1759년 6월)에 51세 연하인 15세 어린 신부를 계비로 맞이하게 된다.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고종 36년에 장종에서 장조 의황제로 추존)와 혜빈(혜경궁 후에 헌경왕후 의황후로 추존)은 28세에 자신들보다 10살이 어린 영조의 계비를 어머니로 모셔야하면서 갈등이 많았을 것이다.

연이어 바로 윤 6월에 이산(후의 정조)을 왕세손으로 정하는 책례를 행하게 된다. 영조 38년(1762) 2월에는 왕세손 이산이 세손빈(후의 효의후)과 가례를 치르게 되고, 바로 그해 윤 5월 13일 무더운 날씨에 이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영조의 명령으로 28세의 건장한 나이에 뒤주에 갇혀 죽게 된다. 이를 ‘임오화변(壬午禍變)’이라고 한다.

사도세자와 동갑인 혜빈은 28세에 며느리를 맞이하자 말자 연이어 젊은 나이에 남편을 비운에 잃게 되고, 11세의 어린 왕세손 이산은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세상에 아버지가 왕세자로 책봉된 아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졌으니, 역사에 이런 일은 또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 영조는 아들을 죽인 왕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궁궐 내에서의 며느리보다 어린 왕비의 위계질서를 확보하기 위해서 애민정치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여인들이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그림. 18c 김홍도의 그림으로 고종이 독일 주치의 분시 박사 귀국 시에 선물한 그림. (출처: 현 독일인 크라우젠 여사 개인 소장)

◆왕·왕비, 애민 정치 표방할 수 있는 행사 무엇이었나

왕과 왕비가 함께 백성을 지극히 여겨 행할 수 있는 행사는 무엇이었을까. 선왕들이 한 행사 중 왕은 친경례를 거행하고 왕비는 친잠례를 행하는 것이었다.

또한 앞날이 멀지 않다고 생각한 74세의 영조는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 어린 왕비의 정체성 확립과 궁궐 내에서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하였을 것이다. 왕과 왕비의 친경 친잠례를 거행한 경우는 성종 24년(1493), 중종 8년(1513), 선조 5년(1572)년 이후 200여년 만에 다시 이뤄지는 것이었다.

선 왕비의 친잠례는 성종 8년(1477)에 처음으로 행사를 했으며, 300여년 만에 다시하는 행사여서 영조는 친잠례 행사에 대해 경사스러운 행사로 여겨 특별한 감회가 새로웠다. 영조는 친잠례에 그치지 않고 처음으로 왕과 왕비가 함께 장종수견례도 행하게 된다.

영조 43년(1767) 3월 10일에 23세의 정순왕후는 경희궁에서 출발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경복궁 옛 터에서 33세의 며느리 사도세자의 부인 혜빈과 16세 왕세손 이산과 15세 왕세손빈과 화순옹주를 비롯해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친잠례를 거행하게 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