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성지를 가다-수도권⑧] 피로 물든 ‘절두산’… 목 잘리기까지 복음의 씨 뿌리다
[종교성지를 가다-수도권⑧] 피로 물든 ‘절두산’… 목 잘리기까지 복음의 씨 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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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 같다고 해 이름 붙여진 ‘잠두봉’ 위에 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세워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돼 수많은 종교가 한 데 어울려 살고 있는 다종교 국가다. 서양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부터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각 종단들은 정착하기까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박해와 가난을 이기며 포교를 해왔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종단들의 성지가 됐다. 사실상 한반도는 여러 종교들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본지는 ‘이웃 종교 알기’의 일환으로 각 종교의 성지들을 찾아가 탐방기를 연재한다.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
병인박해로 천주교 순교지 되며
목 잘린다는 ‘절두산’으로 불려

사형집행에 사용됐던 형구돌
예수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 등
당시 순교정신 느낄 수 있어

[천지일보=차은경 기자] 수백명의 천주교 신자들의 목이 잘려나가 붙여진 이름 절두산. 이곳에도 가을이 훌쩍 찾아왔다. 무성했던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수줍게 인사하는 울긋불긋한 단풍잎들, 어느새 종적을 감춰버린 뜨거운 햇살 대신 찾아온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하늘. 과연 여기가 천주교 신자들의 목이 잘려나간 순교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평화롭다. 그러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절두산은 그 처절하고 애절했던 순교 현장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리라.

절두산은 원래 불쑥 솟은 자태가 누에가 머리를 든 모양 같다고 해 잠두봉이라 불렸다. 잠두봉 바로 아래에는 조선시대 3대 나루 중 하나였던 양화나루 터가 있었는데, 잠두봉과 어울려 빼어난 비경을 자랑했다. 많은 풍류객과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뱃놀이를 즐기거나 시를 지었으며,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이곳을 꼭 들릴 만큼 그 명성이 자자했다. 진경산수화를 개창한 대가 겸재 정선은 ‘양화환도’에서 화폭에 이 풍경을 담아내기도 했다.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던 잠두봉은 1886년 병인박해로 천주교도들의 처형지가 됐고, 그 결과 잠두봉은 목이 잘린다는 의미의 ‘절두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1997년 절두산은 우리 역사의 중요한 유적지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 사적 제399호(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로 지정됐다. 10월 말 짙어지는 가을 향기를 맡으며 순교자들의 넋이 서려 있는 절두산 순교성지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 천주교 신자들의 사형집행에 사용됐던 형구돌. ⓒ천지일보(뉴스천지)

◆미소 짓고 있는 순교자 상

절두산 순교성지 주차장에는 순교자들의 모습과 이름이 새겨진 순교자 기념탑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기록상으로 남아있는 순교자들을 기념탑에 새겨 넣었다고 하는데, 두 손을 꼭 모은 채 미소를 머금고 있다. 기념탑을 지나 걷다 보면 한국순교성인시성기념교육관이 있다. 교육관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동상과 함께, 벽에 걸린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피의 절벽’이라는 시가 눈에 띈다. ‘저 절벽 아래로 목이 떨어져 구르고/ 선혈 낭자하게 흘러/ 절두산이라 이름 붙여진 오늘날까지/ 암벽엔 순교의 핏빛이 그대로 배어있다…’ 구슬픈 시조가 마음을 울렸다.

교육관 오른쪽으로 나 있는 길에는 팔마를 들고 있는 예수의 상이 있다. 예수는 인자한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있지만 손에는 못 자국이 선명하다. 팔마는 믿음을 증언한 순교자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음을 상징하는 것인데 마치 나뭇잎 같이 생겼다. 천주교 신자들의 사형집행에 사용됐던 형구돌도 보인다. 커다란 둥근 돌 가운데 구멍이 나 있는데, 그 구멍 앞에 사람을 세운 뒤 올가미처럼 된 밧줄을 목에 걸고 반대편 구멍에서 잡아당겨 질식시켰다고 한다. 이는 흥선대원군이 천주교 신자들의 사형집행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들라고 지시했다.

▲ 한국인 최초의 사제였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주교 신자들의 목이 잘려나간 ‘절두산’

드디어 절두산이 보인다. ‘잠두(蠶頭)’라는 이름 같이 볼록 솟아있는 형상이 독특하다. 길을 따라 올라가니 바위 위에 한자로 새겨진 ‘절두산(截頭山)’이라는 글자가 시선을 끈다. 섬뜩한 이 산의 이름은 조선시대 말 병인박해로 천주교 신자들이 목이 잘린 데서 유래했다. 1886년 병인양요(조선 말기 천주교가 탄압받자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사건)로 프랑스 함대가 잠두봉 옆 양화나루까지 올라왔다 돌아가게 되는데, 이에 격분한 흥선대원군은 나루터 옆 잠두봉에 형장을 설치해 천주교인들을 처형하게 했다.

절두산에는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과 함께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 성당이 나란히 세워져 있다. 발걸음을 옮겨 박물관에 들어가니 문화해설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러분들이라면 이분들처럼 순교할 수 있나요?” 문화해설사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몇몇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안내자는 “우리 조상들 덕에 우리가 이렇게 편히 신앙할 수 있다는 것을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말을 끝냈다. 그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순교자들이 무참히 죽임을 당하는 그림을 쳐다보던 몇몇이 눈물을 글썽였다.

▲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걸었던 예수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십자가의 길. ⓒ천지일보(뉴스천지)

◆예수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

절두산 순교성지 중앙부에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였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상이 서 있다. 김대건 신부는 천주교 103위 성인 중 한 사람으로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바오르 2세로부터 성인으로 시성됐다. 동상 오른쪽으로 한강을 따라 둥글게 길이 나 있는데,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이 길을 따라 예수의 동상이 펼쳐져 있는데,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걸었던 장면들이 새겨져 있다.

피와 희생의 발자취를 남긴 절두산 역사, 그 고귀한 정신이 오늘날 사는 신앙인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서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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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귀정 2016-11-04 19:02:37
두번째 사진 보니까 섬뜩합니다 순교 아무나 못하는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