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릉구역 인적없이 '빈집' 방치…"여긴 위험한 동네"

(서울=연합뉴스) "밤에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면 종종 섬뜩한 느낌이 들어요. 부산 여중생 사건이 터지고 나서 경찰관들이 순찰을 더 열심히 도는 것 같기는 하지만 빈집을 모두 일일이 들어다보기는 힘들텐데…."

11일 오후 9시30분 서울 성북구 정릉2동 523번지. 주민 대부분이 떠난 정릉 재개발 10구역은 3천여㎡의 사업부지 전체에 어른 키보다 높은 울타리가 처져 있어 주변의 아파트 숲과 완전히 단절돼 있었다.

폐자재와 널빤지가 쌓여 있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니 무언가 발에 밟혔다. 양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주택의 유리창이 대부분 깨진 채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지만 가로등이 거의 꺼져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성북경찰서 정릉지구대 김혁기 대장은 "주민이 귀가하는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가 특히 범죄에 취약한 시간대"라고 했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300여 가구가 살던 이곳은 재작년 여름부터 주민이 하나둘씩 빠져나갔다. 골목 여기저기 붙어있는 이사업체의 광고지가 한때 사람이 살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아직 이사하지 못하고 남아있는 10여 곳을 제외하면 모두 빈집이다.

빈집은 대부분 문이 없다. 철문이나 알루미늄 새시같은 쇠붙이는 고물상이 이미 다 뜯어갔다. 여기저기 뚜껑 없는 맨홀이 속을 드러내놓기도 했다.

한 빈집에 들어가 보니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부서진 가구 사이로 김치통과 담배꽁초가 보였고 옆집에는 매트리스 두 장이 깔려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민들은 외출을 꺼렸다. 이 일대 순찰을 맡은 경찰관과 함께 2시간 가까이 골목을 살폈지만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경찰관이 불이 켜져 있는 한 집의 문을 두드리자 집밖으로 나온 김경은(14)양은 "학원에서 돌아올 때 혼자서 10분정도 걸어야 하는데 김길태 사건이 생각나서 무서웠다"며 "부모님이 저녁 여섯시 이후에는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말고 문단속 잘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재개발 구역 바로 옆에서 10년째 슈퍼마켓을 하고 있는 송정숙(57.여)씨는 "누군가 뒤에서 쫓아온다며 아가씨가 우리 가게 안으로 뛰어들어온 적도 있다"며 "여기는 위험한 동네"라고 했다.

인근에서 5년 넘게 살고 있는 장경윤(31.여)씨는 "길에 혼자 앉아서 술을 마시는 사람도 많다. 슈퍼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무섭다. 작년 겨울부터 공사를 한다더니 아직도 안 한다. 빨리 했으면 좋겠다"며 불안해 했다.

경찰은 부산 여중생 납치살해 사건을 계기로 빈집이 많은 재개발 지역의 방범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날 밤 이곳 골목길을 도보로 순찰한 정릉지구대 황정헌 경사는 "김길태가 잡히고 나서는 집 안 구석구석을 더 꼼꼼히 확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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