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 정조대왕 능행차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글로만 기록된 역사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만약 눈앞에 역사가 재현된다면 어떨까? “아, 그 시절엔 이랬구나”라는 말이 절로 내뱉어질 거다. 지난 8~9일 진행된 ‘2016 정조대왕 능행차 재현’도 그랬다. 정조대 왕의 꿈과 이상이 담긴 을묘원행(1795년). 정확히 221년 만의 재현이었다.

서울 창덕궁을 출발해 시흥행궁까지는 서울시(창덕궁~노들섬)와 금천구(노들나루공원~시흥행궁)가 순차적(릴레이)으로 재현했다. 행사 참여 인원은 1239명, 말은 168필이 동원됐다.

경기도 구간은 수원시가 재현했다. 을묘년 원행의 옛 행차 모습에 가까운 재현이었다. 정조대왕 역할은 서울시 강북구간에는 배우 이광기씨, 강남구간에는 배우 한범희씨가 맡았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우의정 채제공, 경기감사 서유방 등 출연자는 시민공모를 통해 선발됐다. 서울권 총감독, 그리고 출연자에게 행사 후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조 행차 재현 위해 노력”
정조능행차 총감독 박재호씨

역사를 재현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자문을 받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이번 행사에서는 음식과 의상 두 개에 포인트를 뒀다. 특히 정조가 어머니(혜경궁 홍씨)에게 드린 다과는 그때와 똑같이 하려고 노력했다. 221년 만의 재현의 의미는 엄청나다. 사실 역사적으로 굉장히 긴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으로 중요성이 잊히는 듯했다. 그 시간을 이기고 행사를 연 거 같다.

특히 정조하면 ‘효(孝)’가 떠오른다. 시민과 외국인에게 정조의 업적을 알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시민에게 행사를 보여주는 것 자체가 기쁘다. 당시 악사 150명이 있었다는데, 이것도 그대로 재현하고 싶다. 그렇게 하나씩 만들어가면 충분히 유네스코 등재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수원으로 행렬 이어지길”
정조 역 탤런트 한범희씨

 

4시간 동안 정조를 표현해야 했다. 그래서 행사 전 역사책을 꺼내 읽었다. 행사 당일, 아이들이 정조 복장을 착용한 나를 보고 꾸뻑 인사했다. 그런 아이들에게 미소 지어줬다. 관심을 두지 않으면 내가 정조인 줄 모를 텐데, 금천구민은 달랐다. 이들은 “정조대왕 만세”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정조는 정말 효자였다. 정조가 직접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미음 다반’을 올리는 데, ‘정말 정조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이 행사가 내년에도 서울에서 이어지길 바란다. 능행차 이야기만 들어서는 일반 시민은 진짜 뭔지 모른다. 만약 행사가 매년 열리면, 국민의 관심도 커지지 않을까. 또 범국가적 차원에서 창덕궁에서 수원화성까지 한번에 이어지는 큰 그림을 그렸으면 한다.
 

 

“하늘도 감동한 행사”
‘혜경궁 홍씨 역’ 황치석씨

2005년 궁중에서 하는 친잠의궤를 재현한 친잠례 재현 행사에서 혜경궁 홍씨 역할을 맡았다. 조선왕조 의궤를 그리는데, 의궤의 백미인 반차도 중 제일 먼저 한 작품도 정조가 세손 시 행한 ‘가례반차도’다. 최근에는 ‘수원 화성야조도’를 재현했다. 이번에 혜경궁 홍씨를 하게 돼 정말 기뻤다.

행사 당일, 가마에 타고 있는데, 개개인의 얼굴이 다 보였다. 노숙자들, 매장에서 뛰어나온 사람들. 그들 중 어둡고 지친 사람을 볼 때면 나는 더 미소를 지었다. 행사를 보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래서다. 많이 웃어주고 한 사람씩 눈을 맞췄다. 이튿날 수원행사까지 다 봤다. 행사를 마치고 하늘을 쳐다봤는데, 노을빛이 정말 아름다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처럼 하늘도 이 행사에 감동한 듯했다.

 


“몸과 마음, 반듯하게”
‘혜경궁 홍씨 역’ 유숙자씨

전통 자수로 재현하기 위해 수원화성을 자주 오갔다. 수원화성이 좋아 용인에 살다 수원으로 이사도 했다. 개인적으로 정조대왕에 대해 공부도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혜경궁 홍씨 역할을 맡게 됐다. 노들나루에서부터 나의 역할이었다. 배역을 맡은 후 ‘몸과 마음가짐을 더 모범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매순간 조심했다.

행사 당일, 시민들이 행사를 보며 매우 행복해했다. 나도 정말 기뻤다. 3~4㎏의 가체가 전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민과 눈을 마주치며 교감했다. 이 행사가 앞으로도 영원할 거라 생각이 든다. 앞으로 수원과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공예 등의 문화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 남은 삶은 전통 자수로 정조대왕의 작품을 모두 다 완성할 예정이다.
 

 

“아이에겐 예절의 산교육”
‘채제공 역’ 정종구씨

우의정 채제공(蔡濟恭)은 임금을 보좌하는 최측근 인물이다. 내가 채제공이라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말을 타고 가며 정조와 어머니에 대해 시민에게 알리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행사 전 정조에 대한 역사 공부를 많이 했다.

행사 당일, 나는 깜짝 놀랐다. 한 어린이가 나에게 배꼽 인사를 해서다. 나는 아이에게서 웃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봤다. 사실 오늘날은 그게 부족한 시대다. 그런 면에서 이번 행사는 아이들에겐 예절에 대한 산교육이었다. 어르신들에겐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이었다. 행사는 ‘효’를 이야기하는 자리다. 이번 행사는 하나의 촉진제가 될 거다. 앞으로는 민관군이 함께 행사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더 섬세한 행사가 되면, 국민이 더 단합할거다.
 

 

“시민, 매년 행사 기다려”
‘경기감사 역’ 박기원씨

경기감사의 행렬 위치가 궁금했다. 무작정 청계천에 가 ‘정조대왕 능행반차도’를 살폈고, 행렬 맨 앞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 행사 당일, 많은 사람이 행사를 보러 나왔다. 그들에게 ‘손하트’를 날렸는데, 모두 기뻐했다. ‘221년 전 정조대왕도, 호위무사도 이런 기분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이번 행사 또 언제해요?”라고 나에게 물었다. 기약이 없다 보니 “아마 내년에 또 할 확률이 높아요”라고 답했다. “그럼 내년에 여길 또 지나가요?”라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그렇겠죠”라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아이를 보며 “그럼 내년엔 더 일찍 나와야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 순간 많은 사람이 이 행사를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다. 행사가 정말 꾸준히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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