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돼 수많은 종교가 한 데 어울려 살고 있는 다종교 국가다. 서양이나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 종교부터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각 종단들은 정착하기까지 우리나라 곳곳에서 박해와 가난을 이기며 포교를 해왔고, 그 흔적은 곳곳에 남아 종단들의 성지가 됐다. 사실상 한반도는 여러 종교들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에 본지는 ‘이웃 종교 알기’의 일환으로 각 종교의 성지들을 찾아가 탐방기를 연재한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 위치한 천도교 중앙대교당. ⓒ천지일보(뉴스천지)

학의 산실 천도교 중앙대교당

100여년 근현대사 함께한 건물
“기둥 없어 안 돼” 일제 저지로
절반규모 줄여 겨우 건립했지만
당시 서울시내 3대 건물로 꼽혀

대교당 곳곳 韓민족 상징하는
꽃무늬 민족종교 흔적 느껴져
독립선언문배부터·어린이운동
역사 간직… 표석·기념비 세워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서울 종로구 경운동에는 천도교(天道敎, 교령 이정희) 중앙대교당이 있다. 10월 초 중앙대교당을 찾았다. 휴대폰을 켜고 목적지를 확인 후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늦더위가 기승이지만 날씨는 맑다. 지하철에 몸을 얹고, 1호선 종각역에 내려 인사동거리로 향했다. 이곳은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북새통을 이루던 큰 거리에서 좁은 골목길로 빠졌더니 좀 전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눈앞에 파란색 간판이 달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은 문이 나타났다. 문 너머로는 상당한 규모의 대교당이 보인다. 대교당 후문이다. 후문 간판에는 ‘자연 아끼기를 어머니의 살같이’라고 적혀있다. ‘천도교 사상이구나.’

천도교는 ‘사람이 한울님(천도교의 신앙 대상)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를 바탕으로 한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중심으로 한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으므로 사람을 대할 때 한울님과 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뒷문 바로 옆 감나무엔 초가을답게 잘 익은 감이 주렁주렁 달려 눈에 띈다. 중앙대교당을 가까이 보기 위해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중앙대교당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천도교의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는 중앙대교당은 건축미와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아 1978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의 자생종교(민족종교)인 천도교는 제1세 교조인 수운대신사 최제우(1824~1864)를 통해 ‘동학’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도됐다. 이를 제3세 교조인 의암성사 손병희(1861~1922)가 ‘천도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선포했으며, 현 중앙대교당 건립도 추진시켰다.

중앙대교당은 완공 당시(1921년 2월) 타 건물들에 비해 비교적 높고 웅장해 명동성당, 조선총독부 건물(현 경복궁 흥례문 자리)과 더불어 서울 시내 3대 건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과거 이곳에서는 천도교의 종교의식 외에 각종 정치집회와 예술 공연, 강연회 등 행사가 개최되곤 했었다고 전해진다.

중앙대교당은 100여년의 역사를 대변하듯 근대적인 느낌을 물씬 풍겼다. 외관은 붉은 벽돌이 주조를 이루고, 기단과 건물 일부분은 흰 화강석으로 강조돼 색의 조화미와 더불어 입체감이 느껴졌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푸른 빛깔의 첨탑도 눈에 띈다. 정면에서 보면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중앙 현관에는 아치 모양의 출입문이 나 있고, 그 아치 부분에는 우리 민족(배달민족) 나무인 박달나무 꽃 모양의 무늬가 음각으로 쭉 새겨져 있다.

출입문을 따라 대교당에 들어가니 시원하게 확 트인 내부가 인상적이다. 100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 규모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기둥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당시 일제는 대교당이 중앙에 기둥이 하나도 없어 위험하고, 지나치게 거창하다며 건립을 저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절반으로 줄여 겨우 허가를 받았다는데, 원래 계획대로 건립됐다면 그 규모는 엄청났을 듯하다.

▲중앙 현관 아치 부분에 음각으로 새겨진 꽃무늬. ⓒ천지일보(뉴스천지)

대교당 양옆으로 난 창문의 윗부분은 현관 입구처럼 아치 모양이다. 스테인드 글래스 바탕에 보이는 3개의 원은 각각 천(天)·지(地)·인(人)을 상징한다. 신기한 것은 창문에서부터 천장을 가로질러 반대편 창문까지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국화인 무궁화 꽃무늬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는 무궁화와 박달나무 꽃 등이 천도교는 민족종교라고 말하고 있었다.

천도교인들은 이곳에서 일요일 오전 11시 마다 천주교의 미사나 개신교의 예배와 같은 종교의식인 ‘시일식’을 행한다. 대교당은 천도교의 종교의식을 행하는 곳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가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도교는 교인들의 성금을 모아 1919년 3.1독립운동의 거사 자금에 사용, 일제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대교당을 건립했다.

◆천도교 중앙총부 ‘수운회관’

사실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을 하는 데 가장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은 천도교 중앙총부 수운회관이다. 수운회관 입구를 통해 들어오면 ‘독립선언문 배부 터’라고 적힌 표석과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비를 보고 들어올 수 있다. 천도교인들은 이곳에서 3.1독립운동 거사를 위해 선언문을 검토·배부했으며,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선포했다.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인 동시에 천도교인이었다. 그는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에서 자라는 새싹들에게 용기와 꿈을 키워주기 위해 어린이 인권 운동을 펼쳤다.

▲1923년 5월 1일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제정·선포한 자리에 세워진 ‘세계 어린이 운동 발상지’ 기념비. ⓒ천지일보(뉴스천지)

건물 계단 아래 머릿돌에는 ‘이 궁을장은 포덕 65년에 건립했던 수운대신사의 출세 백년기념관에 새겼던 것을 포덕 111년 4월 5일 천일 기념날에 옮기다’라고 쓰여 있다. 궁을장(弓乙章)은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천도의 상징으로 영부(靈符)의 형상을 한 도형을 말한다.

천도교에서는 B.C(Before Christ)나 단기 등과 같은 개념으로 ‘포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포덕은 한울님의 덕을 세상에 편다는 뜻이 있다. 포덕 65년이라는 것은 최제우가 경주 ‘용담정’에서 천도교를 창시한 때로부터 65년이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이곳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오늘도 서울 한복판에서 굳게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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