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간신앙 시리즈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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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이정표 역할, 나쁜 귀신 쫓는 수호신

서낭당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셔놓은 신당으로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합니다.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은 돌무더기 형태로, 그 곁에는 보통 신목(神木)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이곳을 왕래하는 사람들은 돌·나무·오색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다녔습니다. 물론, 그곳의 물건을 함부로 파하거나 헐지 않는 금기가 지켜졌습니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세 번 절을 한 다음 침을 세 번 뱉으면 재수가 좋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서낭이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서, 또는 석전(石戰)에 대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민간에서의 서낭은 종교적 의미가 농후합니다.

장승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웠는데, 나그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는 한편 나쁜 귀신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호신 역할을 했습니다.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들었으며 치켜 올라간 눈, 큼지막한 주먹코, 귀밑까지 찢어진 입은 해학적이면서도 무서운 느낌을 줍니다. 이런 무서운 얼굴에는 병마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는 소박한 뜻이 담겨 있답니다. 장승은 주로 남녀 한 쌍으로 세워졌는데, 남자 장승엔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여자 장승엔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새겼습니다.

장승 옆에는 흔히 기다란 장대나 돌기둥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솟대가 서 있습니다. 하늘로 쭉 뻗은 장대는 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길을, 새는 신의 심부름꾼을 뜻합니다. 이 새는 까마귀라 여겨집니다. 까마귀의 검은 색은 태양 곧 불에 탄 것을 의미해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예로부터 신성시 되었답니다.

우리나라에 서낭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 문종 때로 신성진(新城鎭)에 성황사(城隍祠)를 둔 것이 서낭의 시초라고 합니다. 고려 고종은 침입한 몽고군을 물리치게 된 것이 서낭신의 도움 때문이라 하여 서낭신에게 신호를 가봉하였던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서낭에서는 정기적인 제사뿐만 아니라, 국난이나 가뭄이 있을 때 서낭제를 거행해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하려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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