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새남굿 전수자 큰무당 오민경 선생. ⓒ천지일보(뉴스천지)

서울새남굿(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 전수자 큰무당 오민경 선생을 만나다

고대사 무당·굿 자세히 기록
日, 민족혼 말살정책 희생양
제자들 사라져 가 아쉬움 커
국민 돕는 종교인 되고 싶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어릴 적 시골동네에 찾아온 무당이 무복을 입고 ‘굿’을 하는 풍경은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지금도 가끔 주변에서는 악귀를 쫓거나 액운을 멀리하기 위해 굿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서민들의 삶 속에 뿌리내린 무속신앙으로 자리하고 있다. 제물을 차려 신령에게 바치고, 노래와 춤으로 길흉을 점치고 굿을 주관하는 사제자(司祭者)가 ‘무당’이다.

일반적으로 무당이라 칭하나, 무인(巫人)·무(巫)·무격(巫覡)·무녀(巫女)·단골·심방이라고 부른다. 남자무당을 지칭할 때는 격(覡) 또는 박수·화랭이·양중이라고도 한다. 굿을 하며 신령과 사람과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무당은 오랜 세월 숙련된 큰무당(大巫)과 단골무당, 미숙한 선무당으로 나눌 수 있다.

◆‘굿’ 일제, 미신으로 탄압… 종교·예술 문화재

무당, 박수, 굿, 부적하면 떠오르는 게 샤머니즘이나 미신으로 치부하지만, 무속신앙이 미신으로 규정되고 조직적인 탄압을 받게 된 것은 일제시대의 일이다. 민족혼 말살 정책을 폈던 일본은 민족문화뿐 아니라 무속신앙까지 철저하게 탄압했다. 해방 후에도 일제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무당의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에는 무격, 무당의 행적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

오늘날 전문가들은 굿을 종교적인 색채와 예술적인 색채가 들어있는 문화(재)로 인정하고 있다. 굿을 들여다보면 그 목적과 대상에 따라 씻김굿·지노귀(진오귀)굿·부정굿·제석굿·별신굿·내림굿·동제(洞祭)·성주굿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같은 목적의 굿이라 하더라도 강원도·경기도·황해도·평안도 등 각 지역별로 그 명칭과 절차 등이 다르게 전해 내려져 오고 있다.

무교(巫敎)·무속신앙의 세계를 자세히 알아보고자, 서울지역의 전통적인 망자 천도굿인 ‘서울새남굿(지노귀굿,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 전수자 전각사 오민경(56) 선생을 만났다.

◆“무교·불교·기독교 예식 다를 뿐 같은 것”

큰무당 오민경 선생이 내림굿을 받은 지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는 무당에 대해 “신(신령)에게 선택을 받았다고 하지만, 전생에 업장(악업을 지어 옳은 길을 방해하는 장애)이 두터워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음 세대 자식들을 위해서 업이 남지 않도록 스스로 열심히 닦고 진솔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무교를 미신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기독교나 불교, 유교, 무교는 (종단마다) 믿고 비는 의식(예식)이 다를 뿐이다. 다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다. 신·인간·깨달음 이야기하는 것은 똑같다”며 “무당은 굿을 할 때 말문이 터지고 이야기(신어)하다 보니 (학문적으로) 증명할 길이 없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미신으로 본다. 미신이기 이전에 신명(신령)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교회·사찰 거쳐 무교의 길 들어서다

오 선생은 다양한 종교를 체험한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젊은 시절 교회를 다니다가 불교를 거쳐 무당의 길로 들어선 오 선생은 20대 초반에 무병(신병)을 앓기 시작한다. 당시 교회 성가대 단원으로 봉사도 열심히 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경기도 하늘산기도원으로 기도를 갔는데 안수하던 권사가 기도 중에 그에게 ‘이 길이 아니다’며 교회를 떠날 것을 권해 그 자리에서 나왔다.

이후 결혼하고 절을 다녔다. 사찰을 오가며 봉사를 많이 했다. 그를 수년간 지켜봐온 주지 스님이 ‘그냥 살아가기 힘들다. 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무녀가 되기 싫어 수차례 거부하다 결국 스님의 도움으로 신내림을 받고 무당(신제자)의 길로 들어섰다. 20년간 앓아왔던 무병도 신을 받은 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무속인도 ‘종교인답게’ 살아가야”

갓 무당이 된 그는 홀로서기 2년차, 모시던 할머니 신명의 도움을 받아 중요무형문화재 제104호 서울새남굿 예능보유자인 이상순씨를 만나게 된다. 그를 ‘신엄마(신스승)’로 모시고 신령을 바로 모시는 신수업을 받았다. 무당에게 제일 중요한 신을 모시는 일부터 경배하는 법, 교감하는 법, 굿의 절차와 내용, 춤, 음악, 굿상에 올릴 음식과 차리는 방법 등 무업(巫業)의 재주를 수년간 배웠고, 지금은 서울새남굿 전수자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 선생은 “무업을 배우기가 쉽지 않다. 신을 모시는 규율이 매우 엄하다. 어렵다 보니 배우려는 제자들이 많이 없어 아쉬움이 크다”면서도 “새남굿, 도당굿 등 굿 문화재를 국민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다가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단순히 길흉을 점치는 사람이 아닌 국민에게 도움을 드리는 종교인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끝으로 신엄마가 했던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무속인은 목사, 스님, 신부들과 같은 성직자’라는 신엄마의 가르침을 마음에 두고 있다”며 “생활 속에서 종교인답게 본이 되도록 정성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무속인들이 이웃종교인과 더불어 국민들을 섬기는 그날이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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