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면서 수도인 한양 주변에 도성을 쌓았다. 그리고 성 안에 드나들 수 있는 동서남북에 문을 만든다. 그러면서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문 이름에 담아 놓는다. 동쪽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인(仁)’, 서쪽 돈의문(敦義門)은 ‘의(義)’, 남쪽 숭례문(崇禮門)은 ‘례(禮)’다. 그리고 북쪽 숙정문(肅靖門, 전 숙청문)은 ‘지’를 상징한다. 다만, 당시 백성이 지혜로워지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어려워진다며 ‘지(智)’자 대신에 ‘청(淸)’자를 넣었다고 한다. 선조들의 삶을 담고 있는 4대문, 역사 속으로 대문을 활짝 열어보자.

 

▲ 돈의문 앞 전차길 (제공: 서울역사편찬원)

서대문·새문·신문으로 불렸으나 1915년 철거돼
서울 도성 대문 중 현존하지 않는 유일한 문, 복원 난제
조선총독부, 기와·목재 경매 부치고 헐값에 팔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이곳 어딘가에 웅장하게 서 있었겠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옆 돈의문(敦義門)터 앞. 가만히 서 있으니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루에 수천 명, 아니 그 이상의 사람이 오갈 텐데 이곳에 돈의문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 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숭례문 등 다른 한양 도성 성문처럼 만나볼 수 없어 그저 그 모습만 떠올려야 했다.

서울 성곽의 4대문 중 서쪽 큰 문 ‘돈의문’. 흔히 서대문·새문·신문으로 불렸다. 이문은 조선이 건국되고 5년이 지난 뒤인 1396년에 세워졌다. 축성 당시에는 돈의문 사직동 고개에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

1413년(태종 13년)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의 건의로 돈의문을 닫고 북쪽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지어 출입케 했다. 1422년(세종4) 다시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을 수리했다. 그 뒤 헐린 것을 보수해 1711년(숙종37)에 다시 지었지만,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철거되고 말았다. 그 결과 돈의문은 서울 도성 대문 중 유일하게 현존하지 않는 문이 됐다.

◆중국 사신 왕래 통로

돈의문은 1890년대 말쯤 찍은 사진을 통해 모습을 알 수 있다. 돌축대 한가운데에 홍예문을 큼지막하게 내 도성 출입을 할 수 있게 했고, 우진각지붕의 초루(譙樓)를 세우고 둘레에 낮은 담을 설치했다.

돈의문은 어떤 공간으로 사용됐을까. 돈의문은 도성 정서(正西) 쪽 문으로 모화관(조선시대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으로 행차하는 왕과 중국 사신이 왕래하던 통로였다.

사신들은 무악재(毋岳─) 밖 홍재원에서 옷을 갈아입고 무악재를 넘으면 임금이 모화관까지 마중 나갔다. 중국 사신이 성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지금 적십자 병원 서남쪽에 있는 경고(京庫) 다리에 이르러 대열을 정비한 후에 서대문으로 입성했다.

1624년(인조2) 2월 16일 일괄(李适)이 인솔한 반란군이 서울을 점령할 때는 돈의문이 활짝 열렸으나, 다음 날 새벽 무악전투에서 패해 도성 안으로 들어오려 할 때는 이 문이 꼭 닫혀있었다.

1895년 8월 20일 새벽에 일본이 궁성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할 때도 이 문을 거쳐 광화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단돈 205원에 팔린 돈의문

이후 돈의문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915년 돈의문을 경매에 부쳐 매각한다는 내용의 신문기사가 나온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서울(당시의 경성)을 정비한다는 명목 아래 ‘시구개정’이라는 이름으로 도성 안 각종 도로 정비를 추진 중이었는데, 돈의문 철거도 이 사업의 일환으로 결정됐다.

철거가 결정되자 총독부는 돈의문 육축의 석재는 도로공사에 사용하기로 했다. 문루의 기와와 목재는 경매에 부쳤다. 그리고 경성 사는 염덕기(廉德基)에게 단돈 205원(약 521만원)에 팔아버린다. 6월에는 문루 하부의 체성마저 해체됐다. 그 외에 귀중한 부속물은 총독부에서 관리하게 됐다.

1915년 사라진 돈의문의 흔적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 돈의문 현판이 유일하다.

2009년 서울시 인근의 서대문 고가차도를 철거하고, 2013년까지 돈의문을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고가차도는 철거됐지만, 현재 돈의문 복원은 예산, 원형 복원 등의 문제가 겹쳐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다.

그 시간을 견디고 견뎌 돈의문과 마주한다면, 우리는 그 소중함을 깨닫고 기쁘게 반겨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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