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천지=전형민 기자]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법정에서 “5만 달러를 받지 않았다”며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면서 검찰과의 본격적인 공방이 시작됐다.

한 전 총리는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 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 모두진술에서 “총리공관에서의 5만 달러 뇌물수수라는 혐의는 너무나도 부당하고 악의적인 날조”라며 “살아온 모든 인생을 걸고 제가 평생을 지켜온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묵비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피의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부당한 수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며 “검찰 조사는 진실을 밝히는 공정한 절차가 아니라 요식 절차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한 전 총리의 변호인은 “엄격한 의전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총리 공관에서 갑자기 들이미는 돈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미 사의를 밝힌 상황이라 그에게 인사청탁을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 검사)는 부당한 수사라는 주장에 대해 “대한통운 부외자금을 수사하던 중 곽 전 사장의 자금에 관한 단서가 나와 수사팀 막내 검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우연히 한 전 총리에 관한 진술이 나와 수사에 착수했을 뿐 의도가 있는 수사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고가의 골프채를 선물했고 2004년도 총선자금을 지원했다”며 두 사람의 개인적 친분이 있음을 강조했고 “한 전 총리 측이 수십 차례 출국했는데 달러를 구입한 흔적이 전혀 없고, 곽 전 사장에게서 받은 돈을 여행경비 등으로 쓴 것으로 추정된다”며 한 전 총리와 측근의 금융거래 사실조회를 요청했다.

검찰은 곽 전 사장에게 돈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 인사가 한 전 총리 외에 한 명 더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에 한 전 총리의 변호인은 곽 전 사장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 내사 기록과 야당 유력 정치인의 측근에 대한 내사 기록, 조사과정을 담은 영상물 등의 열람 등사를 요구했다.

11일에는 검찰수사의 단초를 제공한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을 증인으로 출석시키고 2차 공판을 진행했는데 수사를 담당한 권오성 부장검사는 이날 “한 전 총리는 첫 진술에서 곽 전 사장과 친분이 없다고 밝혔는데 친밀하지 않은 이에게 골프채와 선거자금을 받은 이유를 명확히 밝히라”며 한 전 총리를 압박했다.

이에 한 전 총리의 변호인은 “친밀 여부는 주관적 판단의 문제”라며 “이는 반대심문 때 준비된 내용으로 그 때 할 것이다. 답변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며 답변을 거절했고 재판부 역시 “최초 진술에 대해 한 전 총리가 입장을 표명할 의무는 없다. 법적인 의미가 없으므로 조서에는 쓰지 않겠다”고 밝혔다.

곽 전 사장은 이날 두 번째로 열린 공판에서 대한석탄공사 사장 자리에 대한 지원요청으로 한 전 총리와 전화 통화를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지만 재판부는 “정리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곽 전 사장은 “석탄공사인지 한전 갈 것 같다는 내용으로 한 전 총리와 한 번 통화한 적이 있다”면서 공기업 사장 자리를 자신이 먼저 언급했다고 밝혔지만 그 시점이 지원서를 내기 이전인지 후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시점을 명확하게 해달라는 재판부의 요구에 그는 “심장에 대수술을 2번이나 받았고 마취도 오래했는데 2번째 했을 때 구속됐다”며 “그것을 하고 나니 기억력이 나빠졌다”고 대답했다.

이날 공판에 증인 자격으로 출석한 곽 전 사장은 두 사람의 관계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는 “나는 한 전 총리와 친하다고 느꼈다”며 “장관이나 총리를 할 때는 만나기 힘들었고 국회의원일 때는 종종 만났다”고 밝혔다.

한편 6·2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할 예정인 한 전 총리 측으로부터 ‘4월 초부터 선거준비로 재판을 받기가 어려우니 가능한 3월 말까지 피고인 신문을 마쳐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인 재판부가 다음달 9일에 선고하겠다고 밝힌 이번 재판은 오는 22일 뇌물을 주고받은 장소로 알려진 총리공관에 대한 첫 현장검증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이르면 이달 26일쯤 사실상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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