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환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장

가야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해인사 장경판전과 세계기록 유산인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을 품고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가야산이라고 하면 해인사라는 등식이 생길 정도로 해인사와 가야산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대가야의 건국신화인 정견모주 신화가 있을 정도로 그 역사성이 오래된 곳입니다. 또한 신라 말 고운 최치원 선생이 마지막을 보낸 안식처로 최치원과 관련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으며, 최치원을 흠모한 선비들이 조선 후기까지 그를 추모하고 원래의 시를 차운하여 시를 짓고, 그림·석각 등으로 남기는 등 다양한 문화자원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야산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어 자연자원이 풍부하고, 지형경관이 수려하여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다양한 문화자원으로 흥미로운 스토리텔링 구성에 적합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곳입니다.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 자연과 문화가 결합된 복합적인 에코뮤지엄(Ecomuseum)으로서의 역할이 기대됩니다.

따라서 가야산국립공원 사무소는 가야산의 잘 보존돼 있는 자연유산을 바탕으로 명승문화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조선시대 선비들이 산수 유람을 하며 작성한 ‘유람록(遊覽錄)’에 주목합니다. 유람록에는 선비들이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장소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담은 글과 그림이 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유람록’에는 당대 사람들의 의식주 문화를 간취할 수 있으며, 선비들의 여행 여정을 통해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여행 코스와 비교해 변모되고 있는 경관의 시대적 변화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홍류동 계곡 바위에는 다양한 석각들이 산재합니다. 석각을 분석해보면 가야산을 다녀간 다양한 인물뿐만 아니라 가야산으로 들어오는 유람객들에게 알리는 경고 문구도 있습니다. ‘하교남여필파(下敎藍轝筆罷)!- 하교하노라. 반드시 남여를 타고 다니는 행위를 금하노라!’ 이곳은 해인사로 들어오는 관문이자 입구로 신성한 구역인 사찰로 입장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남여는 산행 시 선비들이 즐겨 타던 이동 수단으로 이 글자가 새겨진 바위 위로는 걸어서 통행하도록 한 것입니다. 즉 부처님의 세계인 해인사에 도달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 1. 김홍도 作, 관인원행, 2. 하교남여필파(下敎藍轝筆罷) 석각, 3.최북 作, 홍류동, 4. 고운 최치원 차운시 (제공: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렇듯 가야산국립공원은 가야산을 다녀간 선비들이 남긴 ‘유람록’ 30여편을 분석해 유람 여정을 복원해 보고,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가야산의 다양한 전설과 남겨진 문화자원을 적절하게 제시하려는 탐방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들은 선비들의 산수유람을 시청각적으로 직접 경험함으로써 명승문화를 기억하고, 보다 품격 높은 문화향유와 심화된 자연체험이 가능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또한 단순한 정복형 산행을 벗어나 문화가 있는 산행, 이야기가 있는 산행, 역사 체험 산행 등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봄으로써 기존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건전한 산행 문화가 정착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정체돼 있는 지역 관광이 되살아나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고, 향토자원에 대한 지역주민의 인식 변화, 나아가 우리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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