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용환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장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많은 신(神)들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하늘에는 천신(天神), 바다에는 용왕(龍王)신, 땅에는 지신(地神)이 있다고 믿었으며, 우리 어머니들은 매일 밤 집안의 가신(家神)에게 가족의 안녕을 기원 드렸습니다.

산에도 산신(山神)이 있다고 믿었는데요, 일반적으로 산신이라고 하면 남성 신을 많이 떠올립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가야산에는 여성 신이 가야산을 지켜오고 있다고 전합니다. 바로 ‘정견모주(政見母主)’라는 아름다운 여신입니다. 정견모주는 대가야의 건국신화와도 연결이 되는 분으로 대가야의 건국신화가 이곳 가야산에서 비롯됩니다. 또한 해인사에는 정견모주를 모시는 국사단(局司壇)이 있습니다. 사찰 내에서 유일하게 술을 올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 가야산 상아덤 (제공: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천지일보(뉴스천지)

가야산에는 상아덤(姮娥덤)이라는 큰 바위가 있습니다. 가야산 만물상 구간을 탐방하게 되면 볼 수 있는데, 상아덤의 상아는 한자로 항아로도 읽힙니다. 항아는 달에 사는 어여쁜 선녀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역시 아름다운 여성과 관련이 있는 명칭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합천·성주·고령 지역에서 특히 통용되는 전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금관가야의 건국신화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먹으리’로 유명한 김수로왕의 구지봉 전설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금관가야에서 대가야로 권력의 주도권이 옮겨가면서 왕권의 신성함을 표방하기 위해 대가야에서 만들어낸 건국 신화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옛날 옛적 가야산의 여신인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고 마음을 먹고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 신 이비가지(夷毗訶之)는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왔다고 합니다. 하늘의 신 이비가지는 정견모주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이에서 아들 둘을 낳게 됩니다. 큰 아들은 뇌질주일(惱窒朱日), 작은 아들은 뇌질청예(惱窒靑裔)입니다. 큰아들인 뇌질주일은 지금의 고령지역에서 대가야를 건국했고, 작은 아들인 뇌질청예는 금관가야를 건국했다고 전해집니다.

▲ 해인사 국사단 內 정견모주 (제공: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천지일보(뉴스천지)

또한 가야산에는 정견모주의 손자들과 관련된 전설도 있습니다. 정견모주의 둘째 아들이자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습니다. 큰아들은 왕위를 계승하여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의 성을 따라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됩니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가야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고 전합니다.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던 허 황후는 가야산을 찾았으나 산에 올라갈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 드렸습니다. 그 덕분인지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서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비춰져 아들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연못을 우리는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라고 해서 영지(影池)라고 부르며, 정성이 극진한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칠불봉의 모습이 연못에 비친다고 합니다.

▲ 가야산 우비정 (제공: 국립공원관리공단 가야산국립공원사무소) ⓒ천지일보(뉴스천지)

재미있는 점은 가야산 상왕봉에 있는 우비정(牛鼻井)과 해인사 영지와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우비정은 소의 머리를 닮아 우두봉(牛頭峰)으로 불리는 가야산 정상부에 있는 작은 연못입니다. 일년내내 마르지 않아 가야산 19명소에 뽑히기도 하는데요, 소의 콧구멍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바로 이 우비정 안으로 들어가면, 해인사 일주문 옆에 있는 영지로 연결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번 주 가야산의 다양한 전설을 떠올리며, 등산을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힘드시다면 우비정으로 들어가 하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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