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 고택.

‘대궐 같은 집’이 눈앞에 펼쳐진다.

1965년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돼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그 명성을 잇고 있는

이곳은 조선시대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이 1703년에 건립한 선교장(船橋莊)이다.

3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한국 최고의 전통가옥.

풍류 문화뿐 아니라 나눔과 상생을 실천했던 선비문화의 산실.

시대와 소통하며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선교장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S-U]
조선시대에도 여행을 다니는 일이 있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되지 못한 조선시대에도 먼 길을 오가는 일들이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조선시대 선비들이 평생에 꼭 한 번은 가고 싶어 했던 곳. 바로 금강산 유람입니다.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선교장은 오가는 시인 묵객들의 풍류 놀이터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요. 격식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을 향해 열어두었던 선교장의 문(門)을 함께 통과해보겠습니다.

궁궐에서나 볼 법한 길게 늘어선 23칸의 행랑채와 나란히 설치된 솟을대문과 평대문.|
집밖에 조성된 인공연못 활래정(活來亭)과 시대를 앞선 건축양식인 서양식 차양까지.

일반적인 한국 가옥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과 위용.

경포호 물이 들이차던 이곳에 배다리를 놓아 건넌 데서 유래한 선교장.
300년 숨결이 곳곳에 오롯이 숨 쉬고 있다.

선교장 가장 뒤편, 취재진은 인상적인 초가 하나를 발견했다.

열화당 후원의 정자로 1820년 무렵에 지은 초정(草亭)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시문을 짓고 책을 읽는 곳으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는 공간으로 이용했단다.

부유할수록 자신의 높아짐을 경계하고
검소와 베풂의 덕을 배우며
유유자적 초야에 묻혀 책을 읽는 선비의 모습이 그려진다.

‘초정’의 가르침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을 넌지시 던져준다.

보존 차원에서 비워둔 곳을 제외하곤
숙박실, 전시장, 체험장, 도서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어
선교장은 사람의 온기가 가득하다.

돈후(敦厚)한 후손들이 지혜로 일궈낸 문화유산이
살아서 ‘보전’(保全) 되고 있는 이유다.

강원도 유람의 관문. 화려한 전통 건축의 미(美)를 보여주는 선교장.

풍류와 사교의 중심이자
흉년이 들 때면 지역 주민들에게 곳간을 내어주기도 했던 곳.

넉넉한 인심으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융숭한 대접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서려있는 이야기의 보고, 선교장이다.

(영상취재: 김미라·장수경 기자, 편집: 김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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