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어느 순간 아이의 말 속에 “~때문에”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엄마 때문에, 형 때문에, 친구 때문에.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실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여 수치심 내지는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이는 수치심이나 부끄러움의 원인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는데, 이것이 곧 핑계다. 핑계를 대면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고, 그 결과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경감시키는 효과를 얻는다. 아이 나름대로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한 일종의 방어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만2~3세가 되어 언어적 표현 능력이 생기게 되면 핑계 대기가 가능해지고,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만7세경부터 핑계 대기가 줄어든다. 그러나 개인별 차이가 상당하다.

핑계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남을 탓하는 아이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핑계의 이유 외에 남이 나를 좀 더 살펴주지 않았다는 혹은 남이 나의 상황을 더 잘 파악해주지 않았다는 등 원망의 심리가 깔려 있다. 이러한 원망의 이면에는 강한 의존 욕구가 숨어 있다. 예컨대 “엄마 때문에 밥 먹고 배 아프잖아요”라고 핑계를 대는 아이는 ‘엄마가 나의 속이 별로 좋지 않음을 미리 잘 파악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제공해 주지 않았음’에 대한 원망이 있다. 즉 엄마는 나의 생각, 감정, 욕구 등 모든 것들을 알고 있어야 마땅하고, 더 나아가 나의 문제를 다 해결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둘째, 거짓말을 하는 아이다.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가 강한 핑계의 유형이다. 예컨대 “내가 장난감을 망가뜨리지 않았어요”라고 거짓말을 하는 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분명하게 인지함과 동시에 그것으로 인하여 부모에게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셋째,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아이다. 아이는 자신의 말이 되지 않는 논리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보다는 어서 빨리 부모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주기를 바라거나 화제의 전환을 바란다. 즉 상황을 종료시키거나 얼버무리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말들을 계속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아이는 내면적으로 불안을 느낀다. 자신의 의도가 상대방에게 들킬까 또는 나의 변명이 통하지 않을까 불안해진다. 어떤 아이는 불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발전하기도 한다. ‘방귀 낀 놈이 성낸다’는 속담처럼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가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부모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남을 탓하는 아이에게는 ‘그럴 수 있다’면서 아이의 말을 먼저 인정해 준다. 그런 다음에 부모 생각에는 남의 탓이 아니라 아이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해준다. 무작정 핑계를 대지 못하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옳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아이에게는 부모가 아이의 거짓말을 인지하고 있음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

만일 부모가 아이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거나 혹은 속아 넘어가는 것 같은 태도를 취하면, 아이의 거짓말은 점차 강화될 것이다.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준다.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아이에게는 일단 아이의 말을 끝까지 충분하게 들어준 다음 나중에 아이의 오류를 잡아준다. 중간에 자꾸 끼어들어서 말이 안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면, 아이와의 말싸움으로 번지거나 아이의 짜증이나 화를 자극할 수 있다. 부모가 평소 모범을 보이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엄마가 ~~해서 이렇게 되었구나. 앞으로는 ~~ 해야 하겠다”라는 식으로 독백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준다. 남의 탓이 아닌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깊이 성찰하는 태도를 아이에게 가르쳐 주는 셈이다.

예컨대 “길이 막혀서 약속 시간에 늦었네. 택시 기사님이 운전만 잘 하셨으면 늦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더 일찍 집에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늦었구나. 다음부터는 더 일찍 나와야 하겠다”라고 말한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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