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잇따른 탈북민 환영 및 정착에 관한 발언은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 대통령의 탈북민정책 철학은 진심이 어려 있는 것으로 하여 3만 탈북민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북한에서 탈출을 꿈꾸는 모든 탈출자들에게도 그것은 희망의 메시지이며 우리 모두에게는 곧 통일이 다가오고 있다는 새 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통일부를 비롯한 해당 정책 집행자들은 얼마나 대통령의 철학을 심오하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답은 긍정적이기보다 비관적이다.

탈북민이 늘어나면 대통령은 환영하지만 집행자들은 싫어한다는 좋은 비교가 있다. 즉 식당의 주인과 종업원의 서로 다른 생각으로, 주인은 손님이 밀려들수록 좋지만 종업원들은 설거지도 많고 서빙도 해야 하니 귀찮다는 식이다. 아래 지난 13일 탈북민의 대표적 언론인 뉴포커스 대표 장진성 시인이 쓴 대통령에게 올리는 편지를 그대로 옮겨보고자 한다. “내 딸을 100원에 팝니다”의 저자 장진성 대표는 날카로운 북한 체제 비판과 탈북민의 의견을 대표하는 글로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대통령님께서는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는 것은 폭정에 신음하는 북한 주민에 큰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탈북민이 먼저 온 희망이 되어야 통일의 새 날도 더 빨리 밝아집니다. 그러나 지금 탈북민의 현실은 먼저 온 통일이 아니라 먼저 온 차별, 먼저 온 가난, 먼저 온 좌절입니다. 통일대박이라지만 탈북사회 현실은 통일쪽박입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은 탈북민들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수령주체가 인민주체를 빼앗아가는 북한 체제에서 태어난 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개인 혼란, 정착 방황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탈북민들의 교훈에서도 한국 정부는 겸허히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통일대박은 결코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벌써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형입니다. 지금 탈북민들이 체험하는 정착 실패와 성공의 끈질긴 노력들이 곧 통일의 진통 과정입니다. 탈북민들은 한국 정부에 통일훈련과 경험의 기회를 주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북한 체제의 인민성을 자유민주주의 국민성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이것이 진짜 인간통일,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정답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부의 현 탈북민지원정책에는 자본통일의 자신감만 내세운 비효율적인 과소비만 있을 뿐입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남북하나재단입니다. 탈북민지원 예산이 240억이라지만 실제는 240원짜리 재단입니다. 1억원이 넘는 임원들의 고연봉에 억지로 맞춘 재단의 비만도 문제지만 인권비, 경조사비, 홍보, 연구 등 온갖 명목의 재단자체소비도 탈북민지원예산의 또 다른 수탈구조입니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란 명칭으로 출범하여 ‘양심이탈지원재단’ ‘인맥지원재단’으로 발전하다 못해 현재는 ‘북한이탈주민지원’이란 상징적 문구마저 삭제한 “남북하나재단”으로 개명한 상태입니다. 그렇게 탈북민지원예산을 “남북하나재단”으로 모두 집중시킨 탓에 각 지방 지자체들에서 지원받던 예산과 자원봉사자들의 손길마저 모두 끊겨 탈북민들의 고통은 오히려 더 증가됐습니다.

대통령님! 탈북민도 남한 주민등록증을 가진 남한 국민입니다. 남한 국민으로 정착하고, 남한 사회에서 차별 없는 경쟁을 하자면 그 첫 걸음이 되는 저소득계층의 지원도 행정자치부에서 받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탈북민은 5천만 국민의 영역이 아닌 통일부 산하의 3만 국민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그 탈북민 3만명 대부분이 남북하나재단의 240억 예산을 차라리 국민세금으로 되돌리라고 맹비난하는데도 탈북민심의 권리조차 철저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

왜 탈북민들이 이렇게 탄식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대답은 복잡하지 않다. 탈북민을 이용하여 생긴 기관들에 모두 남한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그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보니 주인이 돼 있어야 할 탈북민들은 그저 나그네 신세를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먼저 온 통일’은 찬란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비참함으로부터는 벗어나야 내일의 통일은 희망으로 준비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는 남북하나재단과 북한인권재단 등 탈북민들이 주체가 돼야 할 기관들에 ‘먼저 온 통일’ 일군들을 대거 진입시키고 그들을 통해 ‘나중의 통일’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것은 역사와 시대의 엄중한 경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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