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수성당에서 바라본 군유지. 메밀꽃과 코스모스, 유채꽃이 어우러져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바다 지키는 수성할머니 모신 ‘수성당’
거센 바닷바람 막아주는 ‘후박나무 군락’
‘해안누리길’ 완만해 누구나 즐길 수 있어

[천지일보=이솜 기자] ‘격포항, 채석강, 영상테마파크, 변산해수욕장…’ 전북 부안군 변산면의 국립공원 변산반도를 찾는 대부분 관광객들의 코스다. 그러나 당신이 관광이 아닌 여행을 왔다면, 혹은 원 없이 바다를 보고 싶다면 ‘마실길’ 걷기를 추천한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할지라도, 높고 낮은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변산반도의 여러 가지 표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변산반도의 많은 명소 중에서도 ‘수성당’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문화 방면 전문가나 무속신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명할 수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수성당은 이 지방의 해안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을의 공동 신앙소로,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이다.

전설에 따르면 이 수성당에서 칠산(七山)바다를 수호하는 수성할머니라는 해신(海神)을 받들어 모셨는데, 이 여신은 키가 매우 커서 굽나무깨신을 신고 서해바다를 걸어 다니며 깊은 곳은 메우고 위험한 곳은 표시를 함으로써 어부들을 보호하고 풍랑을 다스려 고기가 잘 잡히게 해준다고 한다.

또 수성할머니는 딸 여덟을 낳아 각도에 딸을 한 명씩 시집 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서해의 수심을 재 어부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수성당에서 한 여성이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지난달 30일 찾은 이곳에는 무속신앙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고요한 이곳엔 바람과 파도, 기도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곳 관리인에 따르면 제사는 하루에 한 번 있으며 관리인에게 요청해 신당 속에 들어가 기도를 올릴 수 있다. 신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성할머니와 8명의 딸을 볼 수 있었다. 수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해안은 격포해수욕장이다. 날씨가 좋으면 위도까지 볼 수 있다.

돌 하나 놓으며 소원을 빌었다면 마실길로 나설 차례다. 수성당 주변 군유지 3만 2000㎡에 조성된 메밀 꽃밭이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꽃밭의 꽃은 계절에 따라 바뀐다. 곳곳에 유채꽃과 코스모스도 어우러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이 꽃밭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후박나무 군락’을 볼 수 있다. 천연기념물 제123호인 후박나무 13그루가 이곳에 있다. 녹나무과에 속하는 후박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부의 섬들과 해안에도 널리 자라며 울릉도와 서해안의 외연도에도 숲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해안지방으로서는 이 지역이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이 된다. 이곳에 있는 후박나무들은 거센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후박나무에 흥미가 없다면 바로 마실길로 걸어보자. 마실은 ‘마을’을 뜻하는 사투리로 ‘마실길’은 옆집에 놀러갈 때 걷던 고샅길을 말한다. 지난 2009년 조성된 마실길은 2011년 ‘해안누리길’로 뽑힌 데 이어 2012년에는 ‘전국 5대 명품길’에 선정되기도 했다.

▲ 해안누리길 ⓒ천지일보(뉴스천지)

마실길의 해안코스는 모두 8개 코스로 나뉜다. 1코스(조개미 패총길, 새만금전시관~송포 5㎞), 2코스(노루목 상사화길, 송포~성천 6㎞), 3코스(적벽강 노을길, 성천~격포항 7㎞), 4코스(해넘이 솔섬길, 격포항~솔섬 5㎞), 5코스(모항갯벌 체험길, 솔섬~모항갯벌체험장 9㎞), 6코스(쌍계재 아홉구비길, 모항갯벌체험장~왕포 11㎞), 7코스(곰소 소금밭길, 왕포~곰소염전 12㎞), 8코스(청자골 자연생태길 곰소염전~부안자연생태공원 11㎞)이다.

이곳은 1코스로 해안누리길로 지정됐다. 해안누리길은 새만금방조제에서 격포항까지로, 코스가 완만해 해안 절경을 감상하기에도 누구나 무리 없이 즐기기 좋은 길이다.

특히 바다의 여러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길에 따라 나만의 작은 해수욕장 같으면서도 좀 더 걷다 보면 웅장하게 바위를 쳐대는 파도에 깜짝 놀라고 만다. 예상치 못한 경관에 가슴이 벅차오를 때는 가만히 앉아 이 풍경을 눈에 담아 보자. 곳곳에 벤치가 있는 이유다.

끝없이 펼쳐지는 수만 가지 바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감이 떨어져 꼭 바다에 ‘취한 것’ 같다. 너무 많은 것이 눈앞에 펼쳐져 감탄을 뱉어내고 싶지만 마땅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당신 역시 바다에 취한 것이다.

▲ 마실길 1코스 해안도로에서 내려본 광경. 마실길과 해안도로를 끼고 돌면 작고 큰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으레 오래된 명소는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있지만 특히 부안에는 신비한 전설이 많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걷는 길에서 알게 된 구전 속 조상들의 간절함은 여행의 깊이를 더한다.

바다와 바람, 새가 우는 소리에 흠뻑 젖으며 걸어보자. 일상에 지친 날에는 마실길에서 나와 같이 울던 그 파도소리가 그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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