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회 변리사/전 대한변리사회장 

 

대한변호사협회가 10월 5일 서울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변호사 생존권 보장과 행정사법 개정안 저지 집회’를 열었다. 변협은, 정부가 행정사에게 행정심판사건을 대리할 수 있게 입법예고한 행정사법 개정안이 수임난에 시달리는 변호사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생존권 지키려 거리로 나온 것인데, 놀랍다.

변호사들이 거리로 나서는 걸 보니, 변호사업계도 어렵긴 어려운 모양이다. 그렇지만 변호사 먹고살기 어렵다고 해서 모든 일을 변호사가 다 하겠다고 떼쓸 일은 아니다.

변호사법 2조에 변호사의 직무는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 사무를 하는 것’이고, 107조에 변호사가 아니면서 보수를 받으면서 ‘소송, 행정처분에 대한 사건, 일반 법률 사무’를 처리하면 호되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일반 법률사무까지 업무영역에 포함되므로 ‘법’이란 글자가 들어간 일은 변호사만 처리할 수 있는 셈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법’에 관련되지 않은 일은 거의 없다. 업무영역이 무척이나 넓다. 변호사법을 따르자면 돈 받고 하는 심부름꾼도 안마사도 위법자가 될 판이다.

우리나라에는 변호사 이외에도 여러 전문 자격자가 있다. 변리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노무사 법무사 관세사 기술사 행정사 이런 자격들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성을 인정하여 전문가제도를 유지한다.

행정사는 1차 시험에서 민법(총칙) 행정법 행정학개론 3과목을, 2차 시험에서 민법(계약) 행정절차론 사무관리론 행정사실무법 4과목을 보아, 행정분야에서 일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지닌 사람에게 자격을 준다. 변호사 시험에 공법(헌법 및 행정법 분야의 과목)을 보는 것에 견주어보면 행정분야에서는 행정사가 더 전문성이 있다.

더구나, 이번 개정안은 현행 행정사법 2조(업무)에서 ‘5. 인가·허가 및 면허 등을 받기 위하여 행정기관에 하는 신청·청구 및 신고 등의 대리’가 들어 있고, 저 청구 단어 뒤에 ‘(이의신청·심사청구 및 심판청구를 포함한다)’를 추가하여 ‘청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하였다. 저런 규정 방식은 노무사법이나 세무사법에도 찾아볼 수 있다. 명확하게 문구를 다듬은 법안이 어떻게 ‘행정비리 조장법이고 국민권익 침해법’이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또, 행정사가 심판사건을 대리하더라도 변호사가 대리하는 것을 못하게 막는 것도 아니다. 법률소비자는 행정사와 변호사 중에서 선택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니, 법률소비자인 국민이 환영할 일이다. 자격제도는 국민의 편의를 기준으로 만들고 운용해야 한다.

현실에서 불합리하게 변호사 영역이라고 선을 그은 것을 바로잡는 법안을 만들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행정부에서는 법무부와 법제처, 국회에는 각 상임위의 법령소위원회에 변호사 출신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모든 법안은 법사위를 넘어야 하는데 법사위는 거의 변호사 세상이다. 이들이 완벽하게 변호사 영역을 지키고 있다.

2015년 변리사법 개정안 심의에서, 변호사에게 주는 변리사 자동자격을 없애야 한다는 것에 대부분 국회의원이 동의했다. 그러나 변호사 출신 의원 단 한 사람이 반대하니 소위원회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가, 끝내 엉뚱하게 변질되어 통과됐다. 전원합의라는 심의 관행이 발목을 잡았다.

변호사가 만능이 아닌데, 법과 제도는 만능인 것처럼 돼 있다. 막강한 힘을 지닌 변호사가 거리로 나가 변호사 먹여 살리라고 국민에게 외치는 것은, 여당 대표가 국민 앞에서 단식 투쟁하는 모습이 겹쳐진다. 변호사가 만능이 아닌 것을 인정하고,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존중해야 한다. 변호사는 법률전문가로 변호사답길 기대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