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김선호 前 효광중 교장, 양금덕 피해할머니 인터뷰

“99엔 들고 일본 마트에 가보니 껌 한 통도 110엔 하더라.”

▲ 일제 강점기 때 미쓰비시로 강제징용된 근로정신대 양금덕(82) 피해할머니. ⓒ천지일보(뉴스천지)
[뉴스천지=이현정 기자] 지난달 22~25일 양금덕(82) 피해 할머니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관계자는 일본 후생노동성과 일본 국회를 방문했다.

이는 일본 후생노동성이 일제 강점기 시절 근로정신대 피해 노동자들이 미쓰비시로 징용됐다가 일본 패전 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받지 못한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한화 1300원) 지급판결에 대한 항의 방문이다.

일본 마트에 들러 ‘99엔’으로는 껌 한 통도 살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것을 직접 본 양 할머니는 후생노동성 호소카와 리쓰오 부장관을 만나 “이 돈으로 지금 너희 자식들에게 물건 사오라고 한다면 참으로 두 손으로 고이 받을 것”이라며 울분을 터트렸다고 한다.

이후 양 할머니를 면담한 호소카와 부장관과 일본 민주당 의원들은 하나같이 ‘앞으로 더 노력해서 일이 잘 되도록 하겠다’는 말만 전했을 뿐이다.

징용 당시 13살이었던 양금덕 할머니는 돈도 벌고 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 말에 속아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그러나 돈을 구경하기는커녕 학교도 다닐 수도 없었다. 오로지 배고픔을 견디며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매달리는 것이 전부였다.

2년여의 세월이 흘러 일본이 패전한 후 고국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당시 미쓰비시 측에 임금을 요구했지만 “너희 나라로 돌아가면 줄 것”이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결국 양 할머니는 나이 17세에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만으로 ‘몸 버린 여자’라는 취급과 함께 온갖 편견과 설움을 당하며, 징용 당시 얻은 병마와 함께 꽃다운 청춘을 눈물세월로 보내고 만다.

미쓰비시 항공기 제작사에서 하루 약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했지만 월급 한 푼 받지 못했고, 해방 이후에도 국가나 일본정부‧미쓰비시 중공업에서는 어떠한 보상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근로정신대할머니들의 사연이 알려지자 지난해 3월 12일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미쓰비시와 일본정부 측의 보상을 요구하며 함께 싸워줄 ‘근로정신대할머니들과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결성됐다.

처음엔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보상받지 못한 사연이 안타까워 시민 하나 둘이 모이게 됐고, 이후 미쓰비시 측에 손해배상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지난해 10월 5일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열게 됐다.

▲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김선호 前 교장과 양금덕 할머니. 현재 시민모임 소유의 사무실이 없어 외부 시민단체 사무실을 빌려 쓰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이 모임에 음료를 담당하는 일명 ‘김마담’ 김선호 前 효광중 교장은 “현재 할머니들의 설움은 우리 국민들의 설움과도 같다. 피해자들이 억울한 사연을 갖고 있는데도 국가와 광주시는 묵묵부답이기에 국민이 나서고 시민이 나서게 된 것이다”라며 국가와 시의 미흡한 지원을 한탄했다.

김 前 교장은 “국가나 외교부의 ‘99엔’ 판결에 대한 미흡한 대처가 다시 한번 국민들을 서럽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사죄를 마땅히 받아야 할 입장이고 그저 말뿐인 사죄가 아닌 보상문제까지 꼭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하토야마 日 총리는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를 가질 것’을 주문해 과거사 청산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듯 했으나, 최근 일본 정부는 과거사 청산 의지를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이에 김 前 교장은 “총리가 과거사 청산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은 알겠지만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았으면 한다. 임기동안에 청산하고 보상하는 것이 더 빛날 것”이라며 경술국치 100년을 맞는 금년 8‧15 광복절을 기점으로 꼭 사죄와 보상문제의 방안이 나오기를 희망했다.

양금덕 할머니도 “65년을 설움에 눈물로 살아왔다. 사람들이 근로정신대가 위안부라고 잘못 인식하고 있어 몸 버린 여자라는 설움까지 감수하며 살아왔다. 지금이야 함께 도와주는 시민모임이 있어 마음이 살 것 같지만 한평생 흘린 눈물을 보상받기 위해선 일본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가 하루 빨리 사죄하길 바랄 뿐이다”라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징용 당시 일본은 어린 학생이던 근로정신대에게 ‘천황을 위한 일’이라며 강제노역을 시켰지만 해방 후에는 일본에서도 조국인 한국에서도 이들의 처지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65년간 가슴앓이 해온 양금덕 할머니 외 피해 노동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뜻을 모아 준 것은 작년 3월 시민모임이었다.

양금덕 할머니는 “시민모임만 생각하면 훨훨 날아갈 것 같아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는데 이렇게 어린 학생들부터 김선호 선생님 같은 분까지 모두가 뜻을 모아주고 있어서 너무나 힘이 나고 기뻐서 최근에는 건강도 좋아진 편이예요”라며 시민모임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또한 양 할머니는 남은 평생을 시민들과 함께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대상으로 싸워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원고는 양금덕 할머니를 포함해 총 7명. 이 중 지난해 7월 김혜옥 할머니는 결국 타계하고 말았다.

김선호 前 교장의 말처럼 일본과 일본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 양심을 속이지 말고 진정한 사죄를 보여줄 것을 시민모임과 피해 노동자들은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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