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30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기덕 감독이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NEW)

류승범과 영화 ‘그물’ 선보여
어렸을 때부터 남북문제 근접해
집 앞마당에서 시체가 나오기도

“내 영화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아
빛·어둠 대비는 영화가 아름다워”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악어’부터 ‘피에타’까지 개봉할 때마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온 김기덕 감독이 영화 ‘그물’로 돌아왔다. 22번째 작품인 ‘그물’은 기존의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 다르다. 이전 영화들은 인간 본연의 원형적 고뇌를 담았다면 ‘그물’은 남북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영화 ‘그물’은 분단 후 66년 동안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서로를 미워하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고장 난 배로 인해 우연히 남북의 경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가게 된 북한 사람 ‘철우(류승범 분)’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주일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기덕 감독을 만나 영화 ‘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감독은 특유의 회색 생활한복을 입고, 회색 신발 신고, 머리를 묶은 채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등장했다. 그의 영화처럼 김 감독이 강렬하고 교수님같이 어려운 이야기만 늘어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그는 털털하고 화끈한 말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시원하게 답했다.

김기덕 감독이 선보인 영화 가운데 이번에 개봉하는 ‘그물’은 이례적으로 15세 관람가로 분류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솔직히 ‘뫼비우스’가 15세였으면 좋겠고 ‘그물’이 청소년관람불가 심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다른 분들은) 도덕과 윤리적인 측면에서 안 된다고 말하시는 데 저는 뫼비우스를 15세 연령대가 봐야 성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이 작품은 ‘체제에 공포를 주는 것이 맞느냐’ ‘개인의 윤리적 욕망을 그리는 것이 맞느냐’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미래인 15세 청소년들도 부모세대 이후에 겪었던 문제를 넓은 방향으로 보고 접근하고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겼다”고 설명했다.

▲ 지난달 30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기덕 감독이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NEW)

다음은 김기덕 감독과의 일문일답.

-김기덕 감독 스스로가 페르소나가 된 듯한 영화를 만들다가 이런 장르의 영화를 보여 주 이유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평소에 시나리오를 많이 쓴다. 지금도 언제라도 촬영할 수 있는 10개 정도 줄거리가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땐 이 이야기를 썼다가 소재가 지겨우면 다른 거 썼다가 한다. 영화 소재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여러 가지다. 그물도 3~4년부터 (촬영을)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다. 류승범이라는 배우를 만나게 되면서 ‘그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배우를 소개받으면서 2016년 2월에 언제 만들어질지 몰랐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예전 제 영화에는 거친 우화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갈수록 어떤 생각들을 직접 영화에 표현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개봉은 안 했지만 작년에 후쿠시마 원전을 이야기 한 ‘스톱’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전에 ‘악어’ ‘나쁜 남자’ 등에선 한 인간에 대한 욕망을, ‘봄여름가을겨울’은 인간을 사계절에 비유했다. 그때는 제가 사는 세상에 대해 안전하다고 믿었던 것 같다. 영화다운 영화를 창작할 수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고, 남북문제가 여전히 있다. 영화를 할 수 있는 정서를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안과 공포를 안겨줘서 자연스럽게 그쪽에 의식이 됐다. 그래서 ‘스톱’이나 남북문제를 소재로 다뤘던 것 같다.

-‘그물’이 15세 이상 관람가로 분류됐다. 많이 유해진 것 아니냐.

저 스스로는 변한적 없다고 생각한다. 저는 언제나 부드럽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모자는 머리가 길어서 쓰기 힘들고 선글라스는 ‘100분 토론’ 때 일시적으로 쓴 것이다. 유해진 것은 나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도 인간의 원형적 성질에 관해 이야기 하고 싶다. (‘그물’ 외에) 나머지 남은 시나리오는 ‘인간은 왜 이런 구조인가’라는 원형적인 질문 하고 있다. 개인적 감정보다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문제들이 인류를 어떻게 지속해 갈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류승범 외에 나머지 인물들이 전형적인데 이유는.

전형적인 인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상상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영화 속 인물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은 한명도 어렵다. 제 무능일 수도 있는데 모든 사람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면 영화가 길어지고 핵심이 엉뚱하게 가는 것 같아 이 영화는 철저하게 ‘철우’의 이야기로 가기 위해 만들었다.

▲ 지난달 30일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기덕 감독이 인터뷰 후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NEW)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르지 않다고 그린 이유는 무엇.

제가 영화를 미개봉한 것까지 치면 22편이다. 영화를 자세하게 보면 어떤 쪽에 치우치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은 누구도 그럴 수 있다’는 전제성을 깔았던 것 같다. ‘인간은 그래서 인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제목이 ‘나쁜 남자’지만 나쁜 남자의 끝은 이렇다. 인간의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면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이다.

그물은 한 개인을 통해 국가가 얼마나 억압적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 문제 자체가 남북한의 큰 문제하고 연결된 것이다.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들어온 식당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보면 ‘철우’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 같더라. 한국 숙소에서 잠을 잘 때 그 심정. ‘철우’가 선물 받은 옷을 몰래 입어보고 다시 맨몸으로 간 것. 이 영화를 그분들이 볼 상황은 안 되겠지만 심정은 유사하지 않을까.

-극 중 간첩 잡기에 혈안이 된 ‘남한 조사관(김영민 분)’의 모습은 본인의 젊은 시절을 투영한 인물 아닌가.

그렇다. 김영민이라는 캐릭터도 제 안에 있는 캐릭터였던 것 같다. 저희 아버님도 6.25참전 용사였고 실제 포로가 돼서 총 4발을 맞아 평생을 병상에 누워 보내셨다. 어릴 때부터 그 분노와 공포를 봤고 우리도 두려워했다. 그분은 한 번도 인간으로서 꿈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늘 하신 말씀이 ‘빨갱이 새끼들 절대 믿지 마’였다.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영화 ‘수취인불명’에 마당에서 시체가 나온 장면은 실제로 우리 집 마당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긴 적대감은 저를 해병대에 가게 했고 가서도 ‘빨갱이들은 죽여야 해’라는 사고로 근무하다가 제대하고 사회에서 감독이 된 후 주관적인 것보다 객관적인 마음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극 중 ‘남한 조사관’의 나이가 30대 초반이라고 하면 저도 그 나이에 적개심이 있었고, 아버지 모습으로 인한 보복심리가 있었다.

-항상 어둡고, 어려운 영화만 하는 것 같다. 밝고 환한 영화를 해볼 생각은 없나.

저는 제 영화가 어둡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빛과 어둠이라는 대비가 아름다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상상할 수 있게 하는 것. 오히려 ‘그물’이라는 우울한 영화들이 희망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는 사람들이 대안을 찾을 수 있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현실은 어두운데 밝은 영화가 대안을 줄 수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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