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

 

아이의 기억력은 언제부터 발달할까? 기억력은 아이의 뇌가 형성되면서 발달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태내에서부터 혹은 출생 직후부터 기억력이 발달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출생 직후 엄마의 목소리에 반응을 한다면, 이는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이의 기억력은 바로 ‘모방’에 있다. 특히 부모의 어떤 행동을 관찰한 후 즉각적인 모방이 아니라 몇 시간 후 모방을 한다면(이를 ‘지연 모방’이라고 함), 이는 기억력에 의한 것이다. 이는 대개 생후 8~9개월부터 보이는 능력이다. 향후 언어 능력이 갖추어지게 되는 만2세 이후가 되면 아이의 기억력은 폭발적으로 확장된다.

기억력이 이루어지는 두뇌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기억은 두뇌의 여러 신경회로가 함께 작동하는 복잡한 기능이다. 기억의 과정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등록(registration)이다. 우리가 새로운 정보나 지식을 얻을 때 이를 곧바로 뇌에 등록시킨다. 둘째, 저장(storage)이다. 저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정보나 지식은 금세 사라진다. 따라서 암기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 혹은 강렬한 감정과 결부된 지식이나 경험은 저장의 과정을 거쳐서 공고화된다. 셋째, 회상(recall)이다. 구구단을 통해서 계산을 하거나 한글을 이용하여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회상 능력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일련의 세 가지 과정이 이루어질 때 ‘기억’이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기억의 과정은 뇌에서 각종 정보를 부호화하는 분자들이 일정한 연결과정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보는데, 이때 RNA에 의한 단백질 합성이 일어나고 그 결과 신경세포들의 시냅스의 구조가 변화된다. 기억에 관련된 분자생물학적 요소에는 이러한 RNA 외에도 NMDA 수용체, 인산화효소, 전사인자,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 등이 있다. 기억과 관련된 뇌 구조로는 중앙측두엽(해마와 편도를 포함함), 변연계(시상, 유두체, 전두엽 기저를 포함함), 상행망상체, 소뇌, 기저신경절 등이 있다.

한편, 기억에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있다. 단기 기억이란 잠깐 동안 정보가 보존된 상태를 말하는데, 등록의 과정에서 그치고 만 단계다. 즉 부호화되어 저장되기 이전의 단계로서 시냅스 회로가 짧게 활성화된 상태다. 단어 몇 개를 들려주고 다시 말하라고 할 때 쉽게 할 수 있지만, 며칠이 지난 후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알려준 단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외워야 하는데, 이것이 장기 기억으로 바뀌는 과정이다. 즉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반복적 수행과 연습 등을 통한 ‘강화’가 필요하다. 장기 기억은 다시 ‘외현 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 나뉜다. 외현 기억은 주로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 그리고 지식을 회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즉 2년 전 여행지에서 가족들과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하거나 영어 단어 ‘boy’가 ‘소년’이라는 뜻을 알고 있음을 말한다. 암묵적 기억은 일종의 무의식적 기억으로서 이전의 경험이 의식으로 남지 않은 채 이후의 과제 수행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다. 예컨대 자전거를 반복적으로 타서 넘어지지 않고 잘 타게 되면 나중에 다시 탈 때 의식적으로 일일이 기억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수영이나 악기도 배워서 잘 할 수 있게 되면 나중에 잊어버리지 않는 것도 이러한 암묵적 기억 능력 때문인데, 특히 이와 같이 기술과 연관된 기억을 ‘절차 기억(procedural memory)’이라고 말한다.

간혹 아이들이 ‘이런 적이 있었어’ ‘이때가 기억이 나’ 하는 등 엄마를 깜짝 놀라게 할 때가 있다. 과연 아이는 얼마나 기억할 수 있는가? 아이의 기억력은 우리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을 뛰어넘는다. 특히 아이가 인상 깊었던 혹은 강렬할 감정이 동반됐던 기억은 매우 오랫동안 지속된다. 부모와 함께 무엇인가를 하면서 무척 즐거웠던 경험뿐 아니라 아동학대와 같이 매우 부정적인 감정이 동반됐던 기억은 일생 동안 지속될 수 있다. 아이가 좋은 경험들을 오래 기억하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부모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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