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문을 연 정통 일식집 ‘학’도 김영란법 여파로 폐업해 그 자리에 임대 문구가 적혀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법 시행 전임에도 손님 발길 ‘뚝’
“식재료 3만원 이하 맞춤 불가”
60년 전통 한정식집도 간판 내려

대형백화점 “설에나 체감 가능해”
“추석 때 18만원 한우가 최저가”
내년 설 명절 ‘매출 하락’ 불가피

[천지일보=유영선·임태경 기자] “김영란법 시행되는 28일 이후에는 예약자가 거의 제로에요. 이렇게 가다가는 문 닫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의 식당들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28일 이후 예약이 잡히지 않는 곳이 속출하면서 ‘예약절벽’ 사태를 맞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고 룸을 갖추고 있는 한정식, 일식, 한우고깃집 등은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한파를 만난 분위기다.

26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A한정식집은 점심시간대였지만 손님이 있는 테이블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이 식당에서 주로 팔리는 기본 정식 가격은 3만원대부터 시작했다.

식당 관계자는 “설마 했지만 손님의 발길이 벌써 뚝 끊길 줄 몰랐다”며 “법 시행 전임에도 예약이 평소의 절반도 안 된다”고 말했다.

광화문 인근에 B일식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룸 손님이 대부분인 이 가계는 폐업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이 식당 대표는 “손님들이 ‘다음부터 못 올 거 같다’ ‘이게 마지막인 것 같다’는 소리를 하고 갈 때마다 억장이 무너진다”며 “식재료 문제로 김영란법 기준인 3만원 이하로 맞추기는 어렵기 때문에 폐업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 시행 전 아예 영업을 중단한 가게도 나오고 있다.

율곡로 4길의 60년 전통을 자랑하던 한정식집 유정은 지난 7월 간판을 내렸다. 이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이 자주 찾던 곳이지만, 주 고객이던 공무원들이 세종시로 이동하면서 매출이 줄어든 데다 김영란법 여파로 적자 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돼 문을 닫았다. 유정이 있던 건물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변해 있었다.

유정 옆 정통 일식집 ‘학’도 문이 잠겨 있었다. 1995년 문을 연 이 식당은 단가 부담과 비싼 임대료 문제로 폐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4일까지 전국 560개 외식업체 운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26.4%가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 지난 한 달간 매출이 감소했다고 지난 8일 밝힌 바 있다. 평균 매출 감소율은 18.8%이었다.

대형백화점은 김영란법에 대한 별다른 영향을 감지하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이날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소공동 롯데백화점을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본 결과, 김영란법이 시행 전인 만큼 내년 설 명절 때나 되어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답변이었다.

신세계백화점 한우 매장 관계자는 “지금은 명절이 지나서 선물세트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내년 설에나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추석 때 제일 저렴한 한우가 18만원이었다. 5만원 미만 선물세트를 만들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영란법으로 매출 하락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회사에서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기획상품을 내년 설에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롯데백화점 굴비 매장 관계자도 “김영란법의 영향으로 추석 때 매출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며 “내년 설이 되어야 영향이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거 같다”고 설명했다.

실제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한우·굴비·과일 선물세트의 경우 10만~20만원대 형성돼 5만원 미만으로 가격을 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농림축산식품부가 올해 추석 선물세트 판매실적을 분석한 결과, 김영란법을 겨냥한 5만원 이하 실속 선물세트의 판매는 품목과 상관없이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김영란법이 적용되는 내년 설에 고가의 한우, 굴비 등의 선물세트 판매 부진으로 매출 하락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골프업계 타격도 주목된다. 김영란법 영향으로 골프장 예약이 이른바 ‘부킹 절벽’이라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있어 의견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신세계백화점에 입점한 골프용품 관계자는 “김영란법으로 인해 큰 영향은 없을 것 같다”며 “선물하는 경우가 크지 않을뿐더러 개인적으로 구매하거나 대부분 아들이나 며느리가 아버지한테 선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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