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역대 대한체육회장은 상징성이 높은 자리였다.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스포츠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1920년 조선체육회 창립 이래 기라성 같은 민족지도자, 정치인, 관료, 기업인, 체육인들로 이어진 대한체육회장의 면모는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윤치호, 여운형 등 민족 지도자와 유억겸 같은 교육자들이 어두운 식민 현실에서 체육을 극일의 발판으로 삼았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체육발전의 기틀을 든든히 세우고 가장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역동적인 기회를 만들었던 민관식 회장과 김택수 회장은 국민의 표심에 좌우되는 정치인이었지만 태릉선수촌을 만들고 체육인들의 포상제도를 확립하며 온갖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1981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이후에는 정주영, 김종하 등 기업가와 노태우, 김운용, 이연택 등 관료들이 체육계의 수장으로 재력과 권력을 바탕으로 한국스포츠의 세계화에 이바지했다. 최근에는 기업인 박용성에 이어 유도인 김정행이 대한체육회장으로 활동했다.

이제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적 추세에 따라 스포츠를 새롭게 바꿔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스포츠는 저출산, 고령화의 사회적 변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세계 최저 출산율로 운동을 하는 이들이 줄어들며 엘리트 스포츠의 저변이 나빠지고 한국스포츠가 정체의 늪에 허우적대는 무기력한 조짐을 보였다. 대한체육회, 국민생활체육회가 금년 극적으로 통합 대한체육회로 출범하게 된 것은 한국스포츠에 새 동력을 불어넣으려는 일대 전환의 신호였다.

통합 대한체육회는 김정행, 강영중 공동회장체제를 6개월여 만에 끝내고 오는 10월 5일 역사적인 새 회장을 뽑는다. 새 통합 대한체육회장은 과거와 같은 정치인, 관료와 같이 상징적인 인물보다는 ‘실무형’으로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게 된다. 당초 현역 정치인과 관료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 출마할 수 없도록 새롭게 선거규정을 마련하고 지난달 26일까지 경기단체장을 사퇴하지 않는 이들은 출마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새 통합 대한체육회장은 한국스포츠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야 하는 중책을 떠맡는 만큼 체육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이 깊은 이가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지난 23일 최종 후보 등록을 마친 통합 대한체육회장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체적으로 체육에서 실제로 활동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체육학회 전 회장 전병관 경희대 교수, 스포츠총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장호성 단국대 총장, 이기홍 전 대한체육회 부회장, 태릉선수촌장을 역임했던 이에리사 전 국회의원, 유도인 장정수 전 민주평통 자문위원 등이다. 이들이 정치인, 기업인, 고위 관료출신으로 힘과 권력을 앞세운 과거의 체육회장 출신들과 다르게 체육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한국스포츠의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각오를 밝혔다는 게 공통점이다.

통합 대한체육회장 선거도 종전방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기존 50여명의 대의원 투표로 결정되던 방식에서 선거인단의 숫자와 폭이 대폭 확대됐다. 대한체육회 가맹 회원들의 종목별 단체의 대표성을 지닌 위원들과 시·도 체육회에서의 직군별 분야별 추천 선거인 1200여명의 선거인단 포함 약 1400여명의 선거인단이 투표에 참여한다. 따라서 종전처럼 후보들이 대의원들을 상대로 각개 공략을 하기에 사실상 어렵고 현장에서 당선이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각 후보자들은 주어진 10분의 정견발표를 통해 체육에 대한 전문성과 리더십을 잘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누가 새 통합 대한체육회장이 될지 섣부르게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체육과 관련해서는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진정한 한국체육의 발전을 기원하는 그림을 새롭게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이가 돼야 한다. 지금 시대정신은 그러한 통합 체육회장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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