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에 대해 설명하는 신운학 원장. (촬영: 장수경 기자)ⓒ천지일보(뉴스천지)

‘국내 1세대 茶人’ 화정다례원 신운학 원장

50년간 우리 차 연구하고 알려
일본다도 유파서 정식 배움 받아
1967년부터 茶 문화 운동 시작
고려시대 사용하던 사발 있어

국내 茶역사 관심 못 받아 아쉬워
“茶 진리 깨닫는데 30~40년 걸려
제자들에게 알려주는 것 즐거워
80세 될때까지 가르치고 있어요”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차를 마시기 전 예를 갖추기 위해 자세를 올곧게 해야 한다. 올바른 자세에 따라 정신상태가 달라진다. 차를 고르고, 차의 양과 물, 온도 등 차법을 선택해야 한다. 색과 향, 아름다운 맛 3가지가 일치해야 한다. 잔은 두 손으로 들어야 한다. 오른손에 찻잔을 쥐고 왼손으로 바친다. 그러면 양팔이 마음 심자(心) 모양이 된다. 다도를 하면서 마음을 모으는 것이다. 양팔은 겨드랑이에 달걀 하나 들어간 것처럼 벌리고 가슴선 높이로 들어 차를 마신다. 술은 손으로 받지만 잔은 내려서 받는다. 술은 가득하지만 찻잔의 물은 7부 정도 넣어야 한다.

차는 이처럼 정해진 순서와 법도대로 마셔야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은 티백으로 된 차를 머그잔에 우려먹는 방법 외에 차를 마셔본 일이 드물다.

“한 잔의 차에는 수많은 사람의 노고가 들어 있습니다. 맛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 차밭에 나가서 차를 가꾸고, 잎을 따서 제다하고, 세작·중작·대작으로 나눠 포장하죠. 도예가가 찻잔을 만들기 위해 24시간 불을 지키며 땀을 흘립니다. 이처럼 차 한잔을 위해선 많은 분들의 노고가 필요합니다.”

매미가 한참 우는 8월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화정다례원에서 ‘차(茶)’인생을 살아온 신운학(80, 여)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신 원장이 운영하는 화정다례원의 아름다움은 도심 속에 지친 마음을 달래줬다. 잔디가 파릇파릇 고개를 들고 있는 아담한 정원이 딸린 한옥 상심정(相心亭). 이곳에서 차를 마시면 마음마저 깨끗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와 함께한 세월만큼 하얗게 된 머리를 곱게 쪽진 신 원장은 불편한 몸이지만 서울에서 온 손님들에게 차를 정성스럽게 대접했다. 조신하면서도 신중한 손길을 통해 나온 차의 향은 은은하면서도 깊었다.

▲ 서울에서 온 손님을 위해 말차를 내주는 신운학 원장. (촬영: 장수경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우리나라 1세대 차인 신운학 원장은 반세기 동안 한국 전통 차 문화를 조명하고 보급했다. 그는 일본다도 유파 중 하나인 우라센케(裏千家)에서 정식 다도를 배운 다인이다.

1937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신운학 원장은 대학교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으며, 일본 적십자사 등에서 근무했다. 1962년 남편을 만났고, 1967년 남편과 함께 한국에 정착한 후 차 문화 운동을 시작했다.

1968년 녹차우려마시기와 다도기초실기보급 및 전통차 보급을 시도했고, 한·일 국교 정상화가 시작될 무렵 한·일 친선 차 문화 교류를 선도하기도 했다. 이 시기 음료 문화를 개발해야겠다고 다짐한 신 원장은 신세계백화점에 ‘모카커피 하우스’를 설립하고 일반인들에겐 생소한 비엔나커피와 팥빙수를 선보였다.

본격적으로 한국 차 문화를 연구한 것은 1971년 같은 일본인 출신인 이방자 여사의 초대로 창덕궁 낙선재에서 차회(茶會)를 연 이후다. 이후 1982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화정다례원을 열어 전문 차인을 양성하고, 말차법을 연구해 직접 시연하는 등 우리나라 말차 개발과 보급에 크게 힘썼다. 종정다례원 이정애 원장, 화명다례 김명례 원장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흔히 말차를 일본의 차라고 알고 있어 말차를 소개하면 비난을 받기도 했어요. 사실 우리나라는 고려 시대부터 말차를 마셔왔죠. 우리가 만든 차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간 셈이죠.”

말차(抹茶)는 그늘에서 키운 흠 없는 어린 찻잎을 증기로 찐 다음 건조해 맷돌이나 분쇄기로 미세하게 만든 분말형 차다. 고려 시대 사찰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융성했고, 이때 말차도 인기를 끌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도 보면 고려의 차 문화를 이야기하며, 여러 다구와 함께 ‘비취색의 작은 사발(비색소구)’을 설명했다. 당시 다구는 마시는 방법에 따라 제작됐는데 이 사발은 주로 말차를 마실 때 사용했다.

신 원장은 “고려 시대 말차를 많이 음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때 사용했던 사발이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돼 있다”며 “우리나라는 차의 역사가 오래됐지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서울에서 온 손님을 위해 말차를 내주는 신운학 원장. (촬영: 장수경 기자) ⓒ천지일보(뉴스천지)

재일교포 2세인 그가 한국차에 매력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차의 줄기는 같지만 나라마다 그 맛이 다르다는 게 신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일본의 다도(茶道)는 엄격한 격식으로 지키며 체계화돼 있다. 한국의 다례(茶禮)는 자유롭고 소박한 생활예절이 담겨 있고, 중국은 다예(茶藝)라고 해서 차를 끓이는 기술을 중요시 한다”며 “한국 차가 맛있다고 중국에서 만들어 보자고 해도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토지에 차이가 있으니까. 차를 접하고 한국 다도 문화를 알리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몇 사람이 차를 보급하기 시작했고 현재도 한국차인연합회라는 이름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1979년부터 현재까지 일본과 미국, 대만, 중국, 영국 등의 차 관련 행사에 꾸준히 참석해 한국 다례를 시연하고 다도법을 알리는 등 우리나라의 차 문화를 발전에 힘쓰고 있다.

“차 한잔 하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쳤던 것 같습니다. 다도를 하는 사람도 차를 모르면서 그 세계에 들어온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30년 지나가니까 차의 진리를 조금씩 알게 되데요. 진리를 깨닫는데 30~40년 걸렸습니다. 중국차, 대만차, 일본차, 한국차 연구하면서 내 제자한테 알려주는 것이 즐거워서 80살이 될 때까지 앉아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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