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북의 핵 도발에 대한 경고로 한반도 상공을 휙 둘러가는 미국의 전략 폭격기에 김정은과 북한이 얼마나 겁을 먹는지는 알 길이 없다. 무려 60톤의 가공할 재래식 폭탄 적재량을 자랑하는 괌 앤더슨 기지 주둔 전략폭격기 B-1B는 김정은이 불장난을 할 때마다 한반도 상공을 시위 비행하는 단골 전략자산이다. B-1B는 스텔스 기종이며 B2, B52보다 무기 적재량도 많고 속도도 음속을 뛰어 넘어 훨씬 빠르다. 더구나 폭격은 촘촘히 배치된 북의 방공 미사일 사정거리 밖에서 안전하게 김정은 집무실이나 침실 창문에 첨단 미사일을 쏘아 정확히 맞힐 수 있다. 그가 설사 견고하게 구축된 지하 상황실에 은신해있다 하더라도 결코 무사할 수가 없다. 어떤 미사일은 그 땅속에까지 파고 들어가 무섭게 폭파되기 때문이다. B-1B는 물론 무수한 폭탄을 토해내어 일정지역을 무차별 초토화시키는 이른바 융단폭격(carpet bombing)에도 능하다.

알고 보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것이 미군의 전략자산이며 첨단무기다. 원자력잠수함 대륙간탄도미사일 핵항공모함 등은 더 무서운 전략자산들일 수 있다. 이런 전략자산들이 한반도에 전개될 때 북은 신경질적으로 악을 쓰며 비난한다. 가만있다면 저들이 겁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이런 반응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저들이 결코 태연함을 가장할 수 없을 만큼 속이 편치 않구나 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의 전략자산들이 북에 던지는 충격은 이런 정도에 불과하지 김정은으로 하여금 죽음의 냄새나 죽음의 그림자, 죽음의 공포를 절실히 느끼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전략자산들이 다가오는 것이 기분은 몹시 나빠도 피부에 소름이 돋거나 망연자실해지지는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는 그것들이 당장 외과수술을 하듯이 김정은의 목숨을 노린 정밀 미사일이나 폭탄을 투발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무도 베지 못한다는 것을 빤히 안다면 칼날이 시퍼렇다고 무서워할 필요가 없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 

이것이 말하자면 오늘날 세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안고 있는 딜레마(dilemma)이며 고민이고 굴욕이다, 한방에 김정은을 박살내고 싶고 어쩌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때려잡았듯이 죽이고 싶겠지만 복잡한 역학관계와 셈법으로 어쩌지 못한다. 종이 호랑이라고 비아냥거려도  기껏 이 정도밖에는 할 수 없다. 장난감 같은 핵미사일로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허세를 부리고 꼴값을 떨어도 미국은 심하게 발끈하지는 않는다. 아마 소련이나 중국이 이런 모욕을 당한다면 그들은 절대로 참아 넘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만인의 호구이거나 그들이 애써 만들어낸 가공의 이미지대로 항상 맘씨 좋고 물렁해 보이며 키 큰 거인 엉클 샘(Uncle Sam)만은 아니다. 그들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국익에 관한 알고리즘(algorithm)이 철저하고 기민한 나라라 생각한다. 동맹도 미국의 국익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들은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 서고 여론의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전쟁도 불사하며 반대의 경우가 그렇다면 기꺼이 전략적 인내나 평화를 선택하고도 남을 나라라는 것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이런 관점에서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을 전략적 인내로서 미지근하게 대해왔다면 그것이 자신들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에 근거해서였을 것이며 상황이 달라져 다른 정책 옵션(option)을 모색하는 중이라면 그것 역시 더 나은 국익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다. 기실 미국의 태도 변화가 조심스럽지만 확연히 감지되고 있다. 마이클 멀린 전 미국 합참의장으로부터는 북한 핵시설 선제 타격론이 제시된 실정이며 미 의회로부터도 대북 강경책 사용에 관한 주문이 오바마 대통령에 쏟아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자신도 도발을 일삼는 북한은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다소는 이례적인 강경 발언을 토해냈다. 그런가 하면 마치 그 같은 강경 발언들의 물증(物證)적 배경인 듯 최고의 정보 강국 미국은 중국 단둥의 훙샹(鴻祥) 그룹이 북한과 핵무기 제조에 쓰이는 원료 물질들을 밀거래한 증거를 잡아내었다. 그것을 중국에 제시함으로써 국제적인 대북(對北) 규제 전선에서 사실상 사보타지(sabotage)를 해온 중국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훙샹 그룹에 대한 사법적 처벌 절차에 착수토록 했다. 북이 국제적 압박에도 지금까지 온전히 견디어올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우유부단함과 함께 뒷문을 통한 밀거래를 용인한 중국의 이중성 때문이었다. 이래서 북 핵 저지를 위한 국제적 싸움은 북한과의 싸움일 뿐 아니라 중국을 규제 전선에 실효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한 중국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그런 미국과 중국도 북의 핵무기 기술이 거의 완성돼가면서 핵미사일 배치가 임박한 단계에 이르자 쫓기듯 긴박하게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미국에게는 북의 핵 위협이 실질적인 것으로 평가되기 시작했고 중국도 이제는 루비콘(Rubicon)을 건너 되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하게 세계 질서에 편입된 상황이므로 대북 압박 대열에서 무책임한 왕따가 되는 것은 좋을 것이 없다. 더구나 앞날이 불안한 북한을 감싸다 한·미·일 삼각동맹이 현실화돼 그 힘이 위압적으로 그들에게 굽이치고 한국 미국 일본이 첨단 군비 증강의 명분을 갖는 것은 그들에게 소탐대실의 악몽일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도 좀 더 성의 있게 대북 압박 대열에서 한몫 제대로 하는 척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물론 희망적인 관측이긴 하지만 훙샹 그룹 문제로 미국에 발목이 잡힌 형편이어서 발뺌만을 능사로 하기도 더는 면목이 없는 일이 돼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다. 정책의 분위기가 전략적 인내에서 군사적 압박으로 전환되는 국면은 모두의 신경을 예민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한·미 공군이 미 공군 주도로 북핵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 훈련을 실시하게 된다는 사실이 망설임 없이 공개되고 있는 실정 아닌가. 그렇다면 휙 지나가는 미국의 전략자산들이 더는 무심히 봐지지 않는 상황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셈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연스럽게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아슬아슬한 시기다.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극적인 상황 반전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그의 광적인 핵 집착이 문제이며 평화가 절대로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 또한 문제다. 이런 때일수록 막연한 공포에 떨지 않고 담대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루즈벨트가 말했듯이 진정 두려운 것은 ‘공포 그 자체(fear itself)’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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