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강우석 감독이 7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의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어떻게 이런 양반을 교과서 2~3줄 다루나
영화에 김정호 진실한 마음 담으려고 노력

9개월간 마라도부터 백두산까지 다니며
대한민국 사계절 고스란히 영상에 담아
차승원, 천지 보고 감동… 눈물 흘려 NG 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미스터 맘마’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공공의 적’ ‘한반도’ ‘이끼’ 등으로 독보적인 흥행을 이끈 강우석 감독은 영화 ‘실미도’로 천만영화 시대의 문을 연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영화가 흥행되고 개봉할 때마다 주목받는 것은 한 가지 이유라고 말할 수 없다. 탁월한 코미디와 통쾌한 사회 풍자를 통해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웹툰을 영화화하는 등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를 도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30년간 한국영화계를 이끌어온 강우석 감독은 스무번째 연출작인 동시에 첫 사극 작품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로 돌아왔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시대와 권력에 맞서며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동여지도를 탄생시킨 지도꾼 ‘김정호(차승원 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김정호는 역사상 위대한 지도의 제작자이자 지리학자로 존경받고 있지만 사료가 남아 있지 않아 구체적인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강우석 감독은 왜 자신의 스무번째 작품으로 이토록 그려내기 힘든 김정호라는 인물에 대해 그린 것일까.

▲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 스틸.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대동여지도가 왜 목판으로 만들어졌으며, 김정호가 그 시대에 목판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지도를 공유하고자 한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러던 중 누가 추천해서 원작을 읽어보고 이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 그랬죠. 책을 덮고 2~3주간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다시 읽었더니 ‘아. 여기 이런 얘기가 있네’ ‘이런 내용도 있어’라는 것을 알았어요.”

책을 읽은 강 감독은 박범신 작가에게 전화했다. 그는 “박범신 선생님이 쓴 책은 무조건 영화화가 되는데 이 책만 지금까지 안됐다”며 “박 선생님께서 책 나온 지 7년이나 됐는데 이제 영화화하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나도 대동여지도와 김정호 선생에 대해 영화를 준비하면서 알았어요. 어떻게 이런 양반을 교과서에서 2~3줄 다루는 것으로 끝을 볼 수 있느냐는 것이죠. 원작자인 박범신 선생님의 글이나 사료들이나 보면 김정호 선생의 이야기는 신분에 관련된 일입니다. 김정호 선생이 절대적인 힘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이렇게 내버려 뒀겠어요? 적어도 학생들에게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담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들.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대동여지도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김정호의 사명감을 주축으로 그리고 있다. 이 때문인지 지금까지의 강 감독 영화와는 달랐다. 마치 하나의 교육영화를 보는 듯했다.

강 감독은 “폭력적인 부분은 더 잔인하게 보여줄 수 있지만 TV 방영 수준에 맞췄다. 어제까지 일반시사회를 하는데 관객들이 대놓고 애들을 데려오더라. 영화를 보면서 애들이 물어보면 설명해주면서 보더라”라며 “편집기사가 ‘감독님 이제 저 대동여지도를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지만 김정호 선생의 진실한 마음을 담으려고 하니 이런 영화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9개월에 걸친 영화 제작 기간에 강 감독은 최남단 마라도부터 최북단 백두산까지 10만 6240㎞에 달하는 거리를 다니며 영상에 담아냈다. 그 결과 김정호의 여정에 따른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사계절 변화를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강우석 감독은 “박범신 선생님께서 원작을 넘기면서 ‘박범신의 고산자를 찍지 말고 강우석의 고산자를 찍어라. 그리고 풍광을 담아라’고 말씀하셨다. 글로는 못 담지만 영상으로는 담을 수 있으니까”라며 “제작진들이 대한민국 서해안 중에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결정된 곳에서 완성도 높은 영상을 얻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 영화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담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들.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특히 김정호의 시각에서 보는 백두산 천지의 풍광은 CG가 아니냐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배우 차승원도 “백두산 천지가 너무 멋있어서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강 감독은 “백두산 천지를 스크린에 담은 것은 대한민국 상업 영화 역사상 최초다. 특히 촬영된 장소는 일반적인 관광코스가 아니어서 지금껏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백두산의 새로운 절경을 담을 수 있었다”며 “촬영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됐는데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몰려 왔다. 배우는 물론 스텝들도 가슴이 먹먹해져서 말을 잊지 못했다. 차승원은 눈물을 글썽이는 장면을 찍는데 자꾸 눈물을 흘려서 NG를 냈다”고 말했다.

그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후배들이 만드는 영화를 보면 잘 만들고 못 만들고를 떠나서 자극적으로 만들어 보기 힘들어. 내가 20대엔 세상을 조금 보여주는 이야기로, 30대 넘어가면서 ‘투캅스’, 40대에 ‘공공의 적’ ‘실미도’ 등을 만들었지. 성숙해지면서 영화도 같이 성숙해졌어. 요즘 감독들의 영화는 상업영화부터 단편영화까지 죽이고 때리고…. 일반 관객이 나한테 한국영화 왜 이렇게 무섭냐고 말한 적도 있어. 따뜻한 영화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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