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욱 충남대 명예교수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매일 24시간씩 죽음으로 나아간다. 이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우리가 겪어가는 삶이 바로 ‘생로병사(生老病死)’이다.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는 돈이나 일시적인 명예를 중시하는 ‘도구 가치’보다 행복과 건강을 추구하는 ‘목적 가치’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제 자신의 탄생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생로병사에 담겨 있는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생로병사에서 탄생(生)은 ‘축복의 메시지’로 정의하고 싶다. 우리의 탄생이 우연적인 것인지, 필연적인 것인지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과정에 우연보다 필연적인 요인들이 더 많이 간직돼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탄생은 아버지의 정자와 어머니의 난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며 시작이 된다. 이런 부모의 만남이 있으려면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만남이 있어야 하고, 세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확률이 얼마나 낮은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되는 과정에서만도 약 3억대 1의 경쟁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의 탄생은 필연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매우 커다란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세상으로 나오며 터뜨리는 울음소리는 자신의 탄생을 축복해줄 것을 사회에 알리는 고고한 함성이다. 이는 바로 한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경건한 ‘축복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축복을 받고 태어난 자신의 삶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노화(老)는 ‘사는 삶 그리고 열린 삶’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겨난 수정란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분화와 발생 과정을 거쳐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세상 밖으로 나와 빠르게 성장한다. 그리고 사춘기(思春期)를 거쳐 정신적·신체적 성숙이 이루어지며 서로의 짝을 만나는 결혼이라는 ‘만남의 장’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결국 부모가 우리를 낳아준 것처럼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참여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며 누구나 맞이하는 ‘노화(aging)’는 인류가 아직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주요 과제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삶의 여정에서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며 사는 듯이 살고, 마음을 열고 노화를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질병(病)은 ‘시련 그리고 극복의 과제’이다. 인류의 역사는 페스트나 홍역 그리고 결핵 등과 같은 질병과의 전쟁으로 점철돼 왔다. 그 전쟁은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신종플루, 사스(SARS), 메르스(MERS), 지카 바이러스(Zika virus) 사태 등에서 보는 것처럼 현재진행형이다.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도 사람들은 암, 뇌혈관질환,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AIDS(후천성 면역결핍증)와 같은 새로운 질병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이런 질병들은 정복될 수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답은 쉽게 풀어낼 수 없다. 왜냐하면 생명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일상의 환경과 생활양식에 따라 질병의 원인들도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로병사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死)의 의미는 ‘시간의 섭리와 아름다운 마감’으로 정의하고 싶다. 생물계에 영생(永生)을 누리고 있는 생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도 개인에 따라 수명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일까. 삶은 탄생으로부터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따라서 죽음을 숙명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축복받고 태어난 자신 앞에 놓인 ‘시간의 섭리’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삶을 아름답게 마감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생각과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돼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죽음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남은 삶의 아름다운 마감을 위한 자신만의 설계도를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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