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지난달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은 제71주년 광복절이자 건국68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말한 데 대한 후속 조치로 여권이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건국절 논란이 최근 매우 뜨겁다.

여권은 ‘이승만 대통령의 정부수립시기’가 국가성립요건인 국민, 영토, 주권과 국제적인 승인이 충족된 점을 주장한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국가구성요건의 충족과 승인 없이 건국된 나라들이 많다.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은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했는데, 그 당시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로 국가, 영토, 주권이 없었다. 미국은 그로부터 13년 후인 1789년 미연방정부가 수립됐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독립을 선언한 독립기념일을 건국시점으로 삼고 기념한다.

또한 필리핀은 1898년 6월 12일 독립을 선언했는데, 이를 인정한 나라들이 없었음에도 그날을 건국일로 정해 기념한다. 알다시피 필리핀은 1571년부터 370여년간 계속 외세의 식민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후 1946년 7월 4일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일본은 신화 속의 인물인 진무덴노(神武天皇)가 즉위한 첫날을 건국기념일로 삼고 있다.

이처럼 건국은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국조 단군 이래 배달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잣대로 제정한 건국절인 개천절이 있는데 지금에 와서 또다시 건국절을 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마도 여권은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기준으로 한 생일제정이 시대적 과제라고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생일을 놓고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일과 1948년 정부수립일로 국민들 사이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돼 건국절 논쟁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건국시점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면 생일은 상해 임시정부 수립일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헌법전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건국기점정신이 담겨 있다. 독립운동가들은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국회)을 구성하고, 다음날 ‘대한민국’이란 국호로 정부를 수립했다. 이후 임정 각료들은 임시정부를 국가로 생각하며 대일선전포고를 하는 등 대외적으로 활동했고, 당시 국민들도 열렬히 지지했다.

거기에다 정부 수립 후 1948년 9월 1일 첫 발간된 대한민국 관보 1호는 연호 표기를 ‘대한민국 30년 9월 1일’이라고 표기함으로써 상해임시정부가 대한민국의 정부임을 분명하게 했다. 더구나 세계 식민지의 역사상 27년 동안 임시정부를 운영하면서 싸운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투쟁과정에서 일어난 윤봉길의사 의거는 임시정부의 불씨를 되살렸고, 또한 이 의거에 큰 감동을 받은 중국 장제스 총통이 카이로회담에서 조선의 독립을 주장함으로써 우리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이렇듯이 오늘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와 순국선열의 투쟁 위에 존재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궤변으로 헌법정신을 부정하고 임시정부와 순국선열을 폄하하는 망언은 삼가 해주시기 바란다. 굳이 건국절 법제화가 꼭 필요하다면 임시정부 수립일을 건국일로 제정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우리민족 최초 국가인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국경일로 제정된 개천절, 그 명칭을 건국절로 바꾸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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