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에 고인 기름 입으로 빨아내" "쇳덩이 빼내다 손가락 떨어져"
`후지코시' 항소심 판결 앞두고 사과촉구

(서울=연합뉴스) "일주일 내내 쉬지 못한 채 공장에서 일하면서 나라 잃은 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아는가. 일본 재판부는 정의가 실현되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려야 한다."

5일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와 유족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주최로 일본 기업 후지코시의 피해자에 대해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할머니들의 표정은 내내 굳어 있었으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일부 유족들은 일제시기에 강제 연행된 가족들의 사진을 챙겨와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제에 강제 연행돼 도야마(富山)의 후지코시 군수공장에서 강제노동으로 고초를 겪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2003년 4월 일본 도야마현 나고야 고등재판소에 후지코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며 8일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밤과 낮 2교대로 중노동에 혹사당하다 해방 후에도 강제노동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었던 이들은 여자근로정신대가 군 위안부와 혼동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남편과 자식에게 아무 이야기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지난 세월을 한탄했다.

안금옥(79.가명) 할머니는 "열세살 때 일본으로 끌려가 기계에 고인 기름을 입으로 빨아들여 빼내는 작업을 하면서 기름을 하도 많이 마셔서 아직도 위가 좋지 않다. 돈을 보상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강제노동을 시킨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하토야마 총리에게 쓴 요청서에서 "일본 정부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한 대책을 세우고 후지코시사와 함께 강제연행과 노동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유찬이(82) 할머니는 "철공소에서 기계 사이에 낀 쇳덩어리를 빼내려다 오른쪽 엄지 윗부분이 떨어져 나갔다"고 당시 고초를 생생히 증언했고, 전옥남(79) 할머니는 "노예 생활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왜 정부는 보상을 해주지 않는가"라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후지코시사는 일제 말 "상급학교에 보내주겠다"고 속이거나 협박, 12∼15세의 어린 소녀들을 강제 동원해 노동을 시키고도 임금을 주지 않았다. 이에 2003년 근로정신대 피해 여성 등 23명은 후지코시를 상대로 미불임금과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지만 2007년 1심 판결에서 기각당했다.

당시 재판부는 일본군 강제위안부 권유가 허위와 협박에 의한 것이며 후지코시사가 중노동을 강요한 불법성을 인정하면서도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등으로 피고 측이 청구에 응할 법적인 의무가 없다고 밝혔고, 원고들은 즉시 항소했다.

그동안 원고 23명 중 4명은 세상을 떠났다. 이 소송의 원고 김정주(79) 할머니 등 6명은 7일 일본 도야마현으로 떠나 8일 나고야 고등재판소 카나자와지부에서 열리는 판결을 듣고 기자회견을 열어 견해를 밝힐 예정이다.

9일에는 도야마 후지코시 공장 정문 앞에서 사망한 원고들을 위해 추도식을 열고 13∼18일 집회를 한 뒤 19일 귀국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