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동굴 내부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5억년 연륜’ 고수동굴 체험 

종유석 밀림지대 장관 연출 
1년에 0.2㎜씩 15만년 생성  
한여름에 냉기 ‘천연 에어컨’

[천지일보=임문식 기자] 충북 단양을 찾은 건 매우 무더운 여름이었다. 혈혈단신 단양역에 도착한 기자. 등산용 모자에 선글라스는 물론 선크림으로 중무장했지만, 소용이 없다. 대명천지 사방팔방에서 반사된 빛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낮 기온은 서울과 비슷한 35도. 금방이라도 탈진할 것만 같은 날씨다. 어디 패스트푸드점 같이 에어컨 켜진 곳이 없나 두리번거리기도 했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목적지가 있다. 단양 고수동굴. 유명한 석회동굴이다. 우리나라에서 공개된 석회동굴 중에선 가장 많은 방문객이 다녀가는 곳이라고 한다. 오늘은 여길 다녀와야 한다.

단양역에서 고수동굴로 가려면 고수대교를 건너야 한다. 기자는 어렸을 적 단양군 내에서 산 적이 있다. 거의 20년 만의 방문이다. 감회가 새롭다. 어렸을 땐 고수대교가 까마득하게 높게 느껴졌는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높지 않다. 다리 아래 흐르는 남한강 물도 많이 말라버린 것 같다. 20년이면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기니 그럴 만도 하다.

고수대교 중간에 서서 강을 내려다보며 잠시 사진을 찍는다. 그 옛날 강가에서 놀던 추억이 떠오른다. 차가 지나갈 때면 다리가 흔들거려 약간 불안하다. 한참을 지나 대교에서 빠져 나오면 갈림길이다. 오른쪽 길로 내려가야 한다. 왼쪽 길로 가면 가곡면을 지나 천태종 본산인 구인사로 갈 수 있다. 고수동굴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주차 시설을 볼 수 있다. 자가용을 몰고 오면 편리할 듯하다. 도로 주변으로 가로수가 울창하다. 어디선가 밀려오는 아카시아 향기가 또 추억을 자극한다. 아주 진하다. 아카시아 이파리를 뜯으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던 생각도 새록새록 난다. 사진기 셔터를 연신 눌러대며 주변 풍광에 젖어들자 몸도 흐르는 땀에 젖어 들어간다.

▲ 고수동굴 입구. ⓒ천지일보(뉴스천지)

드디어 고수동굴 앞이다. 노란색 대형 간판에 고수동굴이란 글씨가 관람객을 안내한다. 먼저 주차장이 보이고, 밀집한 상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상가들은 대부분 음식점이다. 소백산 동동주, 칼국수, 매운탕 등 메뉴가 관광객을 유혹했다. 하지만 때는 아직 점심도 아니거니와 이미 땀으로 소금기를 쫙 빼서 그런지 식욕은 제로 상태. 상가 사이 골목으로 약간 올라가면 매표소가 나온다. 여기서 표를 사야 한다. 가격은 성인 기준 1만 1000원. 영화 티켓보다 약간 비쌌지만, 이 돈이 천혜의 신비를 간직한 고수동굴을 보존하는 데 쓰인다고 생각하니 아깝지 않다.

▲  ⓒ천지일보(뉴스천지)

관람표 뒷면에 기록된 설명에 따르면 고수동굴은 충북 단양에 위치한 5억년의 연륜을 지니고 약 15만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1395m의 석회동굴이다. 동굴 입구 내부에서 구석기 시대의 타제석기가 발견돼 선사시대의 주거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종유석의 성장속도는 1년에 약 0.2㎜이며 천장에서 늘어진 종유석은 밀림지대를 방불케 하고 있다. 특히 지금 막 생성하고 있는 듯한 원색 그대로의 모습은 살아 숨쉬는 자연동굴로서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주요 볼거리는 배학당(백충탑), 사자바위, 천지창조, 황금주 등이 있으며, 동굴 내에는 약 24종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관람표를 직원에게 확인받은 뒤 맨 먼저 들어가는 곳은 전시실이다. 고수동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다. 현미경, 시청각 자료, 각 동굴 모형 등이 구비돼 있다. 동굴 모형은 꼭 개미굴을 연상케 한다. 전시실 2층엔 재미있는 장치가 있다. 작은 모니터에 석순, 박쥐 등의 캐릭터가 있는데, 캐릭터를 선택한 뒤 그 위에 글씨를 쓸 수 있다. 이름을 적으면 그 이름이 적힌 캐릭터가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다. 또 옆에 있는 발모양 스티커 위에 올라서서 팔을 휘저으면 스크린에 연동돼 나타난다. 스크린상의 캐릭터를 터트리는 것이다. 관람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좋아하는 관람객의 욕구를 반영한 듯 했다.

▲ 고수동굴 종유석과 석순. ⓒ천지일보(뉴스천지)

드디어 동굴 탐험이다. 전시실을 나와 약간 위쪽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폭염을 뚫고 다다른 동굴 입구. 시커먼 내부에서 시원한 냉기가 흘러나와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여기 저기 탄성이 나왔다. 여름엔 춥고 겨울엔 따듯하다는 그 고수동굴이 이거란 말인가. 몇 미터를 더 들어가자 바깥의 폭염은 새까맣게 잊었다. 오히려 으스스한 기분이 들 정도. 그 옛날 조상들도 이 동굴을 천연 에어컨 삼아 삼복더위를 피했을 터. 계단을 따라 앞으로 갈수록 낯선 광경이 펼쳐진다. 고드름 같은 석순이 여기저기 늘어선 모습이 마치 사람의 갈빗대나 울창한 대나무 숲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객들은 사진으로 담기에 여념이 없다. “앗, 성모 마리아상이네” 누군가의 소리에 돌아보니 정말 영락없는 마리아상이다. 용머리상. 천사의 날개. 특이한 모양의 석순은 저마다 범상치 않은 이름을 갖고 있다. 수억년 세월이 빚어낸 작품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 뿐이다.

▲ 고수동굴 내부. ⓒ천지일보(뉴스천지)

위로 갔다 아래로 갔다 다시 위로 또 아래로. 미로 속을 헤매듯 돌고 난 뒤 원래 입구로 되돌아왔다. 동굴 바깥은 뜨거운 열기로 이글거렸다. 동굴 안이 그리워진다. 아쉬운 마음 뒤로 한 채 다시 단양역 쪽으로 향했다. 가다 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던 웬 말 한 마리가 “힝힝~ 푸드덕” 거리며 오두방정을 떤다. 관광객을 태워주고 돈을 받는 용도로 보였다. 이리 저리 날 뛰는 말에 흙먼지가 날려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 고수동굴 내부에 고인 물. ⓒ천지일보(뉴스천지)

단양 시내에 들른다면 명물인 구경시장 방문을 빼놓을 수 없다. 단양엔 5일장이 열리는데, 아쉽게도 이날은 5일장 날이 아니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데…. 구경시장은 한산했다. 덕분에 조용히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시장 아래쪽엔 단양 특산품인 육쪽마늘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끈으로 엮인 마늘이 판매대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시장 중간 지역엔 음식점이 밀집했다. 단양을 방문한 이는 반드시 먹고 가야 한다는 마늘순댓국. 식당 한켠 시원한 에어컨 옆에 자리를 맡았다. 연이어 다른 손님도 무더기로 들어온다. 대부분 마늘순댓국을 주문했다. 10여분 후에 음식이 차려졌다. 순댓국 위로는 다진 마늘이 한 움큼 얹어졌다. 향긋한 마늘 냄새가 입맛을 돋운다. 국물 맛도 진국이다.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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