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그날 저녁, 나지막한 동산이라도 올라 휘영청 떠오르는 밝은 달을 바라볼 때의 감격은 뭐라 다 표현할 길이 없다. 매년 되풀이되는 경험일지라도 항상 그렇게 새롭다. 굳이 그 둥근 달에 소원을 빌지 않아도 훤히 들킨 속마음에 품은 소망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만 같은 날이다. 우리 민족의 큰 명절인 한가위날, 바로 음력 8월 보름날, 비록 분망히 보내는 연중 단 하루일지라도 이렇게 쟁반같이 둥글고 밝은 달과 더불어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행복인 것이 틀림없다. 누구나의 바람이 아닐 수 없지만 이 날만이라도 명절 분위기가 남과 북에서 똑같이 달아올라 강토의 ‘분단’이 결코 민족 동질성의 ‘분단’이 아닌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의 한가위라 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곳에 따라 광란적으로 공중에 총을 마구 쏘아대어 명절을 기념하는 나라들이 있다. 그야말로 광란이다. 이에 비한다면 우리의 명절 기념은 조상과 하늘을 우러르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미풍양속과 법도(法度)를 따르는 점에서 모범적이다. 광란과는 거리가 멀다. 하늘과 조상에 제사를 올리는 한가위를 앞에 두고 한가위를 향해가는 우리의 마음은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정화(淨化)해가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핵과 핵 운반수단의 고도화를 노리는 북에서는 3발의 미사일 발사 폭음이 울리고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결코 한가위를 기념하는 축포가 아니었다. 혹여 한가위를 학수고대하던 북의 동포들이 있었다면 그들을 놀라게 해 한가위의 단꿈에서 깨어나도록 했을 것이 자명한 도발의 광란극이었다. 

북의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바로 황해도 황주 부근의 이동발사대에서 미사일을 쏘아 동해바다 1000킬로미터 떨어진 일본의 방공식별구역(JADIZ)에 떨어지게 한 이 도발극을 현장에서 직접 지도했다. 그는 두만강 유역에 내린 기록적인 호우가 유발한 수재(水災)로 울상을 짓는 ‘인민’들의 표정과는 달리 미사일의 성능에 만족해서인지 파안대소(破顔大笑)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런 정도의 미사일이라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미군기지와 미군 증원전력의 수송로와 상륙 거점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그는 현장에서 고무되어 말하기를 ‘다단계로 핵력(核力)을 키워 미제(美帝)를 더욱 벌벌 떨게 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 전 함경남도 심포 잠수함 기지 인근에서 있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시험 때 한 얘기와 판박이다. 한가위는 다가오는데 과연 북한 동포들은 이처럼 도발 행보에만 매달리는 김정은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입이 있어도 그들이 자유스럽게 말할 수가 없으니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원망하는 마음이 크지 않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짐작만 할 뿐이다.

김정은의 도발행동은 호랑이 등에 탄 심정에서 되풀이 자행되고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국제적인 규제와 압박으로 북의 고립이 심화돼가면서 경제와 민생은 파탄을 향해 치닫고 비자금 금고는 바닥을 드러내며 ‘인민’의 불만은 거친 바다처럼 변해 그의 정권을 위협한다. 이 마당에 도발 책동과 무자비한 숙청에 의한 공포 통치로 ‘인민’을 통제하고 체제의 결속을 꾀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을 듯하다. 기실 그는 민생과 경제를 북돋고 튼튼히 할 골든타임을 놓쳤으며 호랑이 등을 탄 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버린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그가 핵과 핵미사일의 기술 고도화에 광적으로 집착하면서 도발 위협을 되풀이 하는 것은 어차피 이판사판, 갈 때까지 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일 것이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이러나저러나 파멸의 종국이 기다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그것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황주에서 미사일 3발을 쏜 시각은 중국 항저우 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주석과 두 나라 정상회담을 마친 지 2시간 뒤였다. 박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시 주석의 반대 의견을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체계 배치의 불가피성을 우리의 생존차원으로 설파했다. 한편 시 주석으로부터는 중국이 일관된 ‘북핵 불용’ 입장을 견지할 것이라는 약속을 얻어냈다. 김정은은 바로 이 같은 소식에 눈알이 뒤집히고 배가 꼬이고 아픈 것을 참을 수 없어 중국과 우리의 뒤통수를 갈기는 심정으로 미사일을 쏘았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중국은 아직도 북한이 그들의 전략적 자산이라는 인식을 강하게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드’ 배치의 원인 제공행위인 김정은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우리의 ‘사드’에 대한 완강한 반대와는 다르게 그것에 반대하는지 마는지 모를 정도의 아리송한 자세를 보였다. 그렇긴 하지만 중국이 선뜻 안보리의 북 미사일 발사 규탄 결의에 동참한 것은 김정은의 도발 행위에 대해 불쾌하다는 뜻을 말보다 행동으로 분명히 그리고 결연히 드러낸 것이라 관측할 수 있다.

나라 안팎 사정은 이렇게 한가위가 다가오거나 말거나 숨 가쁘게 돌아갔다. 우리의 주목을 예민하게 끈 것은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뿐이 아니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드’에 반대하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도 정상회담을 가졌다. 아무리 국가 간에 견해 차이가 있는 심각한 이슈들이 있어도 정상들이 만난다는 것,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원만한 해결의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박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안 남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과도 만나 불변의 견고한 한미동맹관계를 확인하고 약속 받았다. 오바마가 약속한 미국의 ‘핵우산 확장’은 한국에서 대두되는 핵 무장론을 잠재우는 미국의 유용한 카드의 하나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한국의 유사시에 미국이 핵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확실하게 즉시 반격할 것임을 명확히 했다. 

이처럼 한러, 한중, 한미 정상외교는 어느 것 하나 북과 김정은을 옥죄지 않는 것이 없었다. 지나간 정상외교만이 아니다. 우리는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것 말고는 그들이 살아갈 길이 없음을 뼈저리게 깨달을 때까지 입체적인 총력외교를 계속해야 한다. 국가 안위가 걸린 외교 안보 전선에 명절이나 쉬는 날은 있을 수 없다. 이래서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은 불철주야 경각심이 필요한 외교 안보 전선에서 회자될 얘기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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