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 칼럼니스트 

 

소주와 막걸리는 우리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전통 술이다. 막걸리는 삼국시대부터 전해내려 왔고, 소주는 고려 때 들어온 술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페르시아에서 생겨난 증류식 술 제조법이 몽골에 들어와 소주가 되었고 이것이 고려 때 우리나라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안동소주도 고려 때 몽골군이 경북 안동에 주둔하면서 제조하여 마셨던 것이라 한다. 러시아의 보드카, 중국의 배갈 따위가 우리 소주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조선 순종 때 빙허각 이씨가 엮은 ‘규합총서’는 여성들이 반드시 알고 실행해야 할 살림살이의 지혜를 모은 책이다. 장 담그기, 술 빚기, 밥 떡 반찬 만들기를 비롯해 옷 만드는 법, 누에치는 법 등 생활의 슬기를 모아놓은 가정백과였던 셈이다. 여기에 16가지 술 만드는 법이 나오지만 소주와 막걸리는 빠져 있다. 소주 막걸리는 가르치지 않아도 누구나 빚을 줄 안다고 여겼던 것이다. 

소주 막걸리가 흔한 술이었지만 그렇다고 늘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소주와 막걸리는 곡물로 빚어야 했기 때문에 규제가 심했다. 나라에서 툭하면 금주령을 내렸고 이 때문에 백성들은 몰래 술을 빚어 마셨다. 영조는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하는 한편 소를 도살하거나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하였다. 정조도 금주령을 내리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낼 때도 술 대신 단술을 만들어 쓰도록 하는 등 모범을 보이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민가에서는 술 익는 냄새가 솔솔 풍겼다.

조선 말 서울 인구가 늘면서 식량 문제도 심각해졌다. 봄이면 쌀이 부족했고 상인들의 농간으로 쌀값이 요동치기 일쑤였다. 그때 그때 쌀을 사 먹어야 했던 서울 사람들은 쌀값에 민감했고, 싸전 상인들의 장난질에 분노한 사람들이 싸전을 때려 부수거나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금주령을 내려 단속을 했지만  농부들이 마시는 막걸리는 못 본 체 해주었다. 막걸리는 농사를 짓는 데 꼭 필요한 ‘농주(農酒)’라 여긴 것이다.

일제강점기 왜놈들도 쌀 등 우리 농산물을 마구 거둬가고 민가의 술 제조를 금지했다. 대신 술 생산과 판매를 정부 전매 사업으로 만들어 제 놈들 배를 채웠다. 왜놈들은 또 동네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자를 뽑아 밀대라는 이름으로 밀주제조를 고해바치도록 했다. 밀대 역시 일본 앞잡이였던 셈이다. 일제에 잘 보여 군 단위로 허가해 준 양조장을 갖게 된 자는 떼돈을 벌고 떵떵거리며 살았다.

해방이 되고서도 한참 동안 민가에서 함부로 술을 만들어 마실 수 없었다. 국가 수입과 식량 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우리 전통 술의 명맥이 끊기고 국민의 기호가 무시되는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아직도 술 제조와 판매에 관한 국가의 간섭이 여전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눈치 보지 않고 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다. 소주 막걸리일망정 한잔 술에 시름을 잊고 조상의 음덕을 기릴 수 있다면 그 또한 다행이지 싶다. 곧 추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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