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성경] 왜 좋은 명작들은 교회에는 적고 성당에는 많을까
[명화로 보는 성경] 왜 좋은 명작들은 교회에는 적고 성당에는 많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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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택 관광영어통역안내사/목사 

 

고갱의 작품 ‘언제 결혼할래?’라는 작품이 3000억 정도에 매매됐다고 한다. 그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과연 얼마나 할까? 60조원에서부터 1경원 정도로 감히 감정할 수조차 없다고들 한다. 처음으로 루브르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볼 때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이 있다. 오래 대기하면서 지루함보다는 명작을 대하게 되는 설렘이 컸는데, 막상 보니 미술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런 무미건조한 느낌 그대로였다. 일본 전시 때에는 한 사람에게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 10초였다는데, 내게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지식과 읽어 낼 수 있는 눈이 없었던 때였다. 우리는 보통 서양미술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유명하고 비싸기는 한데 나만 모르는 것 같아서일까? 

필자는 오랜 해외 생활에서 체득한 기독교 미술에 관한 이야기들을 성경의 내용과 비추어서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서양미술과 성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자 연재를 시작하게 됐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거기에 더해 이렇게 이야기 해보고 싶다. “아는 만큼 믿는다”. 이제 독자들에게 미술이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창의적이게 하는지 알게 하고 싶다. 천 번도 넘게 강의해왔고 현장에서 설명해 왔고, 설교해 오면서 쌓은 것들이 앞으로 지면을 통해 펼쳐질 것이다. 수많은 강의를 하다보면서 알게 된 것은 성경의 거의 모든 사건들은 수천년간에 걸쳐 그림으로 그려져 왔다는 것인데, 이 그림들을 가지고 성경을 설명을 할 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너무 쉽고 재미있게 성경과 명작들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럼 왜 성당은 그림을 많이 보유하게 됐을까? 교황 그레고리우스1세(AD 540~604)는 “그림을 통해 읽지 못하는 자들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성전의 그림도 성경의 역할을 합니다”라고 했다. 기독교가 국교화가 되면서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게 해야 했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성경을 가르칠 만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수단으로 그림을 이용하게 됐다. 그림이나 조각을 보고 지나갈 때마다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데 좋을 뿐 아니라 신부나 수녀 등 교역자들이 성도들에게 그림을 설명하면서 성경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림만큼 좋은 소재가 없었던 것이다. 기독교가 공인됐던 초기에는 성전 안에 그림이나 벽화 등이 르네상스 시대의 천지창조처럼 월등히 수준이 높다거나 하지 않았고 교육 목적의 성향이 짙다 보니 성경의 내용을 펼쳐내는 데 그쳤다. 중세시대가 지나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세계적인 화가들이 성당에서 그림을 그리는 일들이 많았다. 그 시기에는 주요 주문자인 교황청이나 추기경 등 성당의 관계자들의 문화적 수준도 높아졌을 뿐 아니라, 상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신앙인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로 개신교의 교회들에는 그림이 많지 않은 이유는 그 이후로 성서가 본격적으로 번역 및 보급이 되고 성경도 신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도 번역본 성경을 갖는 것이 일반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천주교 성당의 사치스럽고 화려한 작품들보다는 검소한 청교도 정신의 신앙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그림보다는 말씀중심으로 시대가 바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 회엔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로 시작해 구약의 사건들을 독자들께서 다 아실 만한 명작들로 그림과 성경을 해설해 나가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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